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78> 『심청전』은 깨달음의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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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심청전』을 읽다 보면 참 놀랍습니다. 옛 이야기로만 치부하기엔 은유의 메아리가 너무 깊기 때문이죠. 그래서 ‘현문우답’은 심청전의 주인공을 ‘심청(沈淸)’이 아니라 마음 심(心)·맑을 청(淸) 해서 ‘심청(心淸)’이라 불러봅니다. 왜냐고요? 심청전의 스토리를 마음을 맑히는 이야기, 다시 말해 깨달음을 향한 구도기로 보기 때문입니다.

심청의 아버지는 심봉사죠. 앞을 못 보는 장님입니다. 그건 우리들 자신에 대한 비유입니다. 우리는 봄날의 꽃, 여름의 녹음, 가을의 바람, 겨울의 눈발을 ‘있는 그대로’ 보질 못하죠. 늘 거기에 ‘나의 감정’을 대입해서 바라봅니다. 그래서 꽃은 슬픈 꽃, 녹음은 절망의 녹음, 바람은 외로운 바람, 눈발은 두려움의 눈발이 되고 말죠. 결국 세상과 우주는 희로애락으로 범벅 된 비빔밥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늘 스스로 만든 창(窓)을 통해 바깥을 보니까요.

그런데 성현들은 말합니다. “있는 그대로 보라!” 도통 감이 잡히질 않죠.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데, 있는 그대로 보라니. 대체 어떻게 보라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오리무중입니다. 그런데 『심청전』은 그 방법을 일러주죠. 그래서 ‘현문우답’에게 『심청전』은 하나의 경전입니다. 우리에게 ‘눈 뜨는 법’을 일러주기 때문이죠. 잘 들어보세요.

심봉사는 눈을 뜰 수 있다는 얘기에 공양미 300석을 부처님께 시주하겠다고 약속하죠. 그 말을 들은 심청은 깜짝 놀랍니다. 가난한 처지에 공양미 300석은 ‘심청의 목숨’을 뜻하니까요. 뱃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숨을 주고서야 구할 수 있는 돈이니까요. 심청은 고민하죠. 그리고 결심하죠. 자신의 목숨을 내려놓기로 합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끔 말이죠.

혹자는 이런 심청을 비난합니다. “부친 시봉이 힘들어서 죽음을 택한 것 아니야?” “심청은 현실도피주의자”라고 몰아치죠. 그러나 ‘현문우답’의 생각은 다릅니다. 왜냐고요? 그걸 ‘심청의 출가(出家)’로 보니까요.

머리 깎고 산으로 가는 게 출가가 아니죠. 나의 집착이 내려지는 순간, 그게 바로 출가의 순간이죠. 심청의 가장 큰 집착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앞 못 보는 아버지에 대한 걱정과 보살핌, 책임감과 자책감이었겠죠. 결국 그런 마음을 안고 심청은 배를 탑니다. 그리고 인당수로 향했죠.

바다에선 풍랑이 ‘우르르!’ 몰아칩니다. 집채만한 파도가 뱃전을 ‘탕!탕!’ 칩니다. 큰 배가 휘청휘청합니다. 왜 그럴까요? 심청의 마음이 그런 겁니다. 심청이 틀어쥐고 있던 그 모든 집착과 소망, 그리고 불안이 요동치기 시작한 거죠. 심청은 배 위에 엎드려서 “나 죽기는 서럽지 않으나 홀로 계신 아버지는 뉘에게 의지한단 말이오?”라며 통곡을 합니다. 그리고 결심하죠. 자신이 움켜쥔 모든 집착을 놓기로 말입니다. 그리고 치마를 둘러쓰고 인당수로 ‘훌~쩍’ 뛰어내리죠. 그렇게 몸이 떨어지면서 마음(집착)도 떨어진 겁니다. “푸웅~덩!”

그 순간, 바다가 ‘촤~악’하고 가라앉습니다. ‘현문우답’은 이 대목에 주목합니다. 왜 바다가 ‘촤~악!’하고 가라앉았을까요? 그렇습니다. 색(色)이 공(空)으로 들어간 거죠. 심청의 집착은 ‘색(色)’입니다. 그 색이 바다로 들어간 겁니다. 바다는 ‘공(空)’을 뜻하니까요. 색이 공으로 들어갔으니 색즉시공(色卽是空)이 이뤄진 겁니다. 그래서 이 우주가 고요해진 거죠. 왜 고요할까요? 바람도, 파도도, 심청의 집착도 원래 비어있기 때문이죠. 색즉시공의 순간, 심청이 그걸 봤던 겁니다.

이로 인해 심봉사는 결국 눈을 뜹니다. 심봉사뿐만 아니죠. 맹인잔치에 왔던 봉사들이 다 눈을 뜹니다. 내가 눈 뜰 때, 세상이 눈을 뜨죠. 우리도 틀어쥐고 있는 집착을 인당수에 하나씩 둘씩 풍덩, 풍덩 내려놓으며 가다 보면 결국 눈을 뜨게 되죠. 그때는 나만 눈을 뜨는 게 아닙니다. 이 세상이, 이 우주가 동시에 눈을 뜨는 거죠. 그때 탄성이 터집니다. “여기가 불국토구나!” 그러니 『심청전』이 얼마나 값진가요. 눈 뜨는 법, 그 핵심 중의 핵심을 일러주니까요.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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