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파슈툰族 '피의 보복'수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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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달 아프가니스탄 발크주 발크시의 파슈툰족 마을. 10여명의 하자라족 무장 군인들이 모녀가 사는 한 집에 들이닥쳤다. 무리 중 우두머리가 "너희 파슈툰의 운명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군인들은 이어 30세 여인을 방으로 끌고 들어가 욕보였으며, 그 광경을 딸(14)이 보게 한 뒤 딸에게도 같은 만행을 저질렀다.

피해 여인은 "딸만은 건드리지 말라고 애원했는데도 무참히 짓밟았다"고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www.hrw.org)의 파슈툰 인권침해 조사단에게 털어놓았다.

지난해 12월엔 발크주 다우라타바드 마을에 군인 수십명이 몰려와 가재도구와 돈을 빼앗고 저항하는 파슈툰족 남자들을 총으로 쏴 죽이는 바람에 주민 수백명이 피난길에 올랐다.

HRW 조사단은 지난 1,2월 아프가니스탄 북부지역 20여곳을 방문한 뒤 이같은 내용의 파슈툰족 인권침해 사례 1백50건과 주민의 증언록을 최근 공개했다. 증언록은 총검으로 난자당한 40대와 채찍과 몽둥이로 두시간 이상 구타당해 숨진 30대 남자 등에 관해 상세히 기록했다.

조사단은 "탈레반 정권이 붕괴된 뒤 북부지역의 군벌들이 파슈툰족 거주지를 자신의 세력 아래 두기 위해 각종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파슈툰족을 중심으로 구성된 탈레반에 박해받다가 미국의 힘을 빌려 이들을 쫓아낸 북부동맹 소속 우즈베크·타지크·하자라족이 파슈툰족에게 피의 보복을 하고 있다.

파슈툰족은 주로 동·남부에 거주하지만 일부는 19세기말 타 종족이 다수인 북부지역에 이주했으며, 이들이 테러의 주 대상이 되고 있다.

21일자 워싱턴 포스트는 "파슈툰족 박해를 방치할 경우 부족간 갈등이 더 깊어져 정정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북부지역에서는 압둘 라시드 도스툼 장군이 주도하는 우즈베크족이 모하메드 아타 장군의 타지크족의 세력확장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파슈툰족에 박해를 가하고 있다. 파슈툰족은 아프가니스탄 최대 종족이면서도 카르자이 수반이 이끄 과도정부에 소수만 참여하고 있어 갈등의 골이 깊어가고 있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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