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와함께하는 NIE] 토론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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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박형수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주제별 토론에 필요한 논거 신문서 찾아

경기외고 1학년 3반 학생들이 ‘영어 공용화’를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사진은 토론자들을 지켜보는 배심원단의 모습. [최명헌 기자]

“영어 공용화 정책을 추진하려면 4조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이 지출됩니다. 이 예산의 상당 부분은 영어 원서를 구입하거나 원어민 교사를 채용하느라 외화 유출로 이어집니다. 우리처럼 완성도 높고 과학적인 말과 글을 갖고 있는 민족이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가며 외국의 언어를 공용화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김나영)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입니다. 그리고 영어는 세계를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언어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영어에 익숙하지 못한 민족은 사회·문화·경제적인 경쟁력을 인정받기 힘듭니다. 영어 공용화가 이뤄진다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저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선우샘)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토론을 이어가는 학생들의 책상 위엔 신문 기사가 수북했다. 학생들은 상대방이 주장을 펼치면 신문에 게재된 객관적인 근거를 들어가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영어 공용화에 찬성 입장을 밝힌 소성호군은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의 조사 자료를 언급했다. 전국 273개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의 1년간 총 사교육비가 22조4000억원에 달하고 이 중 50%가 넘는 비용이 영어 교육에 쓰였다는 것이다. 영어 공용화를 실시하면 이 엄청난 사교육비가 경감되니 4조원이라는 영어 공용화 정책 추진 비용은 합리적인 투자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반대 입장에 선 김대훈군은 “영어 공용화를 실시해도 영어 사교육비는 줄지 않을 것이고 학교 교육도 파행적으로 운영될 것”이라며 반론을 제기했다. 김군은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의 교육만으로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모국어 수준으로 올라서기 힘들다”며 “부유층은 유학에, 중산층과 서민층은 학원에 더욱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 “공용화로 인해 학교에서 영어 수업 시수가 늘게 되면 다른 과목 시수는 줄게 되는데 이로 인한 학생들의 경쟁력 저하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각계각층의 견해 접하며 균형 잡힌 안목 길러

최 교사는 1학년 모든 학급에 NIE 토론 수업을 하고 있다. 토론 주제는 학급 학생들이 알아서 정한다. 다음 달 주제는 ‘흉악범의 얼굴 공개’로 미리 정해뒀다. 6명의 토론자가 3명씩 찬성과 반대 측으로 나뉘어 토론에 임하고 배심원단도 6명으로 구성돼 토론 승자를 가린다. 나머지 학생들은 청중이 돼 토론자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교사는 토론의 규칙을 설명하고 발언과 질의 시간을 알려주는 등 전체적인 진행을 맡을 뿐 토론 내용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찬성 측과 반대 측이 번갈아가며 주장을 펼치는 식이라 앞서 발언한 사람의 주장의 허점을 짚어내 제대로 반박한 다음 자신의 의견을 발표해야 승기를 잡을 수 있다. 찬성 측 토론자 이유경양은 “토론을 준비할 때 내 주장은 물론이고 상대방이 논거로 삼을 만한 내용이 무엇인지까지 조사하고 반박거리도 마련해가야 한다”며 준비의 어려움에 대해 얘기했다. 반대 측에서 토론에 임한 차선영양도 “계속 상대방과 공방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나의 입장에 대한 내용만 준비해가면 낭패를 보기 쉽다”며 “토론을 통해 오히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목소리에 더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문의 장점이 여기에 있다. 최 교사는 “책을 읽어도 저자 한 사람의 견해만 접하게 되는데 신문에는 짤막한 기사 한 편에도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담겨 있어 토론에 활용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교재”라고 강조했다.



최병수 교사의 How to NIE

“상대방이 반대 심문을 해오면 정말 인간적으로 싫어져요.”
김대훈군이 수업 끝 무렵에 토론 소감을 발표하며 한 얘기다. 김군의 말에 반 아이들은 박장대소를 했다. 최 교사는 “서로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해야 하는 토론의 특성상 수업 중에 속상해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토론 수업의 규칙과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토론 주제 선정: 신문 사설 등을 꾸준히 읽으면서,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고 토론자들에게 관심을 끌 만한 쟁점들을 골라 다수결로 정한다.

-주제 정의: 토론 주제를 명확히 정의한다. ‘영어 공용화’에 대해 토론한다면 ‘영어 상용화’나 ‘영어 소통화’ 등의 개념과 어떻게 다른지 의미를 정확히 해야 오류를 막을 수 있다.

-논점 정리: 주제를 어떤 범위까지 다룰 것인지 항목으로 만든다. 예를 들어 ‘영어 공용화’는 경제적·문화적·정치적 범위로 한정하는 식이다. 각 논점에 따라 주장과 논거를 준비해야 상대방 발언에 대해서도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

-토론 규칙: 토론자 1명당 발언 시간은 5분이다. 상대방 발언에 반대 심문을 할 때도 5분을 넘기면 안 된다. 주제에 벗어나는 이야기를 중언부언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서다. 발언 전에 미리 생각을 정리해 일목요연하게 발표하는 습관을 기르게 한다.

-배심원 판결: 토론이 진행되는 도중에 토론 평가서를 작성한다. 토론 내용을 분석적·비판적으로 들으며 최종 판결을 내리는 데 합당한 근거를 수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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