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인가 공사판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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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각급 학교의 새 학기가 시작됐지만 교정 안팎이 시끄럽다. 많은 초·중·고교에서 교실 신·증축 공사가 한창이고 일부 지역에선 고교 배정에 반발해 학생들이 입학식에 불참하는가 하면 학부모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교실 부족은 지난해 7월 교육부가 학급당 학생수 감축안을 발표하면서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당초 2004년을 목표로 했던 학급당 학생수 감축(초·중교 35명, 고교 40명)을 대통령 지시에 따라 고교는 올해까지, 초·중교는 내년까지 35명으로 줄이기로 했다. 이후 전국 곳곳의 학교가 공사판으로 변해버렸다. 교실 증축 공사에 나선 고교만 7백50여개에 이르며 이중 절반 가량인 3백60여개교가 아직도 공사 중이다.

이러다 보니 경기도 부천과 울산 등지에선 공사가 늦어져 교실도 없는 학교에 학생들을 배정, 이웃 학교에서 더부살이 수업을 해야 할 형편이고 일부 지역에선 교과서가 모자라는 사태마저 생겼다. 교육부측은 "지난해 9월에야 예산이 확보된 데다 수능시험을 앞두고 고3생을 위해 잠시 공사를 중단하는 바람에 지연됐다"며 5월 말까지 공사를 끝내겠다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이런 사정이 고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전북 전주시의 한 초등학교에선 교실이 부족하자 강당을 칸막이로 나눠 교실 4개로 사용하고 있다. 윗부분이 터져 있어 옆 반 수업 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뒤쪽에 앉은 어린이들은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전시(戰時)를 방불케 하는 이런 여건에서 수업인들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는가.

학급당 학생수 감축은 학습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백번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더부살이 수업과 강당 수업을 강행하면서까지 학생수 감축에 연연해선 안된다. 교육부는 이제라도 학급당 학생수 감축 일정을 신축성 있게 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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