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집값… 때늦은 물붓기 : 주택시장 안정대책 왜 나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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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여러 가지 부동산 안정대책을 내놓았다.'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느낌이 들지만 아무튼 이번 조치로 부동산 시장의 과열은 다소 수그러들 전망이다.

그동안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정부의 상황판단에는 문제가 있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경제가 소비 증가와 건설 활황에 힘입어 겨우 회복되고 있는데 부동산 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대책을 미리 내놓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해 서울 강남권의 재건축 붐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올들어 상황이 심각해지자 세무조사와 기준시가 수시 조정 등 임시방편적인 대책을 내놓았다. 별 효과가 없자 이번에 부랴부랴 그동안 논란이 돼온 제도 자체에 메스를 가한 것이다.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침체된 부동산 경기를 부추기기 위해 ▶부동산 전매 허용▶분양가 자율화▶청약배수제 폐지 등의 부양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하지만 부동산은 꿈쩍도 안하다가 지난해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고 주식시장이 침체를 보이면서 시중의 남아도는 자금이 몰리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서울 강남권의 재건축 붐에 투기꾼들이 가세하고 교육 열기가 겹치면서 이른바 부동산 투기 양상으로 번졌다. 지난해 서울의 주택 매매가격은 12.9%나 올랐다.

올들어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서 서울은 1월에만 3.7% 급등했으며 정부는 봄 이사철을 맞아 서울은 물론 수도권에서도 가격 상승폭이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여기에다 부동산이 있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의 빈부격차도 점점 벌어지는 상황이 됐다.

이번 조치 중 분양권 전매 제한은 분양권 시장의 과열을 식힐 수 있는 가장 손쉽고 부작용이 적은 방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분양권을 당첨받은 뒤 얼마 안가 프리미엄을 붙여 팔아치우거나 떴다방이 중간에 끼어 분양권을 여러차례 넘기는 현상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단 외환위기 전에는 분양권 전매를 완전히 금지했으나 이번에는 중도금을 2회 이상 납부할 때까지만 금지한다.

만 35세 이상 무주택자에게 전용면적 25.7평 이하 분양물량의 50%를 우선 분양하는 제도는 외환위기 전에 있던 제도를 부활하는 것이다. 실수요자인 무주택자에게 주택을 공급한다는 의미는 있지만 투기꾼들이 무주택자의 명의를 사들여 분양에 나서는 등 이면거래가 성행할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분양가를 억제할 수 있는 대책이 빠진 것도 아쉽다고 진단한다. 최근의 부동산 시장은 건설회사들이 분양가를 올리고 다시 분양가가 기존 아파트 값을 끌어올리는 악순환이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또 청약예금에 가입한 지 오래 된 일부 사람에게만 청약 자격을 주는 청약배수제를 부활하자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정부는 올 상반기에 청약 1순위가 되는 2백만명의 청약예금 가입자가 반발할 가능성이 커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청약 과열이 이어질 경우 도입을 검토해볼 만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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