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에 누가 돌 던지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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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주당 김근태 고문의 '고백'이 정치권에 커다란 고민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2000년 8월에 치렀던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 때 5억4천만원을 썼고 이중 2억4천5백만원은 선관위에 신고하지 않은 돈을 썼다"는 그의 고백은 개인적으로는 정치적 자살행위로 보인다.

공소시효가 시퍼렇게 살아있는데다 검찰이 수사에 들어가면 사법처리를 피할 방법이 없다. 만일 3년 이하의 실형을 선고받으면 金고문은 대선후보 경선은 물론 의원직도 날아간다.

이에 대해 그는 "그런 고백도 없이 남들에게 깨끗한 정치를 하자고 요구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지만 당내에서는 "어리석은 행동"(수도권 초선 의원)으로 치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金고문의 고백 이후 심지어 야당조차 대놓고 金고문의 처벌을 요구하지는 못하는 묘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4일 "2000년 우리 당의 부총재단 경선에서도 몇몇 후보가 상당한 돈을 뿌렸다"고 고백했다. 또 검찰은 "선관위가 고발해와야 수사한다"는 입장이고 선관위는 "다 공개된 내용이니 검찰이 알아서 수사하라"면서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이런 묘한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나는 김근태보다 더 깨끗한 정치를 해왔다"고 자신있게 말할 정치인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검찰이나 선관위도 다른 정치인들이 어떤지를 뻔히 아는 마당에 김근태 고문의 양심 고백을 문제 삼기는 영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정치자금과 관련해서는 여야 모두 공범인데 김근태 고문이 그걸 폭로했다"면서 "그걸 잘했다고도 못하고, 잘못했다고도 하지 못하는 게 의원들 대부분의 심정"이라고 실토했다.

지난해 7월 24일 제정된 부패방지법은 제35조에 '신고자 보호조항'을 뒀다. 내부 부패를 신고한 사람에게는 그가 조직 내부에 있음으로써 관련된 범죄에 대해 형을 줄이거나 면제하는 조항이다.

김근태 고문은 실정법을 위반했다. 하지만 그의 고백 동기와 그간의 정치행보를 감안할 때 이런 조항의 보호를 받을 수는 없는지 궁금하다.

金고문의 고백을 계기로 여야가 정치자금의 투명화와 제도화를 위한 방법을 먼저 고민했으면 한다. 그것이 우리 정치를 한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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