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 내모는 싸구려 삼류 책들 소비자가 걸러냅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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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옛날, 어느 집에 여동생이 시집을 못 가고 있었단다. 오라버니가 신랑감을 너무 골라 나이가 차고 넘치도록 시집을 못 간 것이다. 그래서 하루는 여동생이 꾀를 내 오라버니에게 '정자 좋고 물 좋고 놀이터 좋은 곳'에서 먹고 오라며 점심밥을 싸줬단다. 그날 오라버니는 결국 점심밥을 그대로 가져왔다. '정자 좋고 물 좋고 놀이터 좋고…'.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곳이 없어서였다.

그동안 '아이들에게 어떤 과학책을 보여 주어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퍽 여러 가지 조건을 제시한 듯하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는 책, 더 새로운 질문을 하게 만드는 책, 작가가 명확하게 알고 쉽게 풀어 쓴 책, 올바른 생각과 과학적 태도를 지닌 책, 책임감을 가지고 사실과 주장을 구분해 설명한 책, 흥미 있는 문체와 형식, 내용을 확장시켜 표현한 일러스트레이션, 사실을 외우게 하기보다 원리를 알게 하는 책, 사물의 느낌과 사물의 연관이 담겨 있는 책 등….

좋은 과학책의 조건은 그 밖에도 수없이 나열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행복한 비평은 좋은 작품 앞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던가? 이런 저런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책이 드문 상태에서 '책 권하는 일'은 때론 고역이다.

아이들에게 책을 골라주는 어른들도 마찬가지일 게다. 좋은 책이 다양하게 출판될 때 좋은 책에 대한 안목도 의미가 있다. 그런데 제한된 책들을 놓고 여러 조건에 맞는 책을 골라 사려면, 오라버니처럼 그냥 돌아오기 일쑤일 게다. 그러니 독자들로서는 출판사가 책을 잘 만들기를 바랄 수밖에….

출판사가 어떻게 하면 좋은 책을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좋은 작가와 일하는 것이 첫째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이렇게 말했더니 출판 관계자 입에서 대뜸 "너무 비싸서…"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그 출판사는 인세를 10% 이상 주시나 보죠?" 나도 대뜸 물었다. "그게 아니라…." 말끝을 흐린다. 설명을 안 해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책을 남보다 싸게 넘겨 '이문 보는 장사'를 하고 있으니 책 만드는 값, 특히 작가의 저작료를 제대로 줄 수 없는 것이다. 유통 과정에서는 10~20%를 싸게 넘기면서도 저작료는 매절하는 출판사가 많다. 저작료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은 책이 제대로 된 책일 수 없는데, 의외로 그런 출판사들이 장사가 더 잘 되는 경우도 있다.

어른들이 책을 고르는 안목이 없으면 깎아 팔기의 유혹이나 방문판매자의 말을 따라 이류·삼류의 책들을 더 잘 사기 때문이다. 그 피해자는 물론 아이들이다.

다시, 좋은 과학책 출판은 좋은 독자가 있어야 가능해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독자들이 좋은 책을 알아보고 잘 선택해야 출판사와 작가도 좋은 책을 내놓을 수 있다.

<어린이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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