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만에 베일 벗는 이집트 공동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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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마스크를 쓴 미라가 무더기로 발견되고 있다. 최근 서부 사막지역에서 최대 규모의 미라 공동묘지를 발굴하던 이집트 문화재당국은 10일 "매장된 미라는 1만여구로 추정되며 이 중 상당수가 황금 마스크를 쓰고 있다"고 밝혔다.

발굴 장소는 카이로에서 서쪽으로 375km 떨어진 바하리야 오아시스의 '황금 미라 계곡'이다. 제작 시기는 약 2000년 전, 로마가 이집트를 통치하던 때라고 문화재 당국은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부 석실에서 23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미라가 나오고 있어 이 무덤이 로마제국 이전 그리스가 이집트를 점령했을 때부터 수백년간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공동묘지가 발견된 것은 1993년. 문화재관리국의 한 경비원이 타고가던 당나귀의 한 발이 땅속으로 푹 빠졌다. 당나귀를 구해낸 뒤 꺼진 땅을 파본 경비원은 곧바로 사무실로 달려가 본부에 전화를 걸었다.'지하 죽음의 세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 이집트 문화재당국은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간단한 조사만 했다. 미라 몇구만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9년 대규모 발굴팀을 이끌고 현지에 도착한 이집트 최고의 고고학자 자히 하와스 박사의 눈에는 단순한 무덤이 아니었다. 한 석실에서 미라 수십구를 발견하자마자 또 다른 방으로 이어지는 연결통로가 나타나곤 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미로를 파내고 석실을 발굴 중인 하와스 박사는 "수평방km에 달하는 이 고대 공동묘지의 1차 발굴조사에만 1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며 "아직도 정확한 석실 수와 무덤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 공동묘지"라고 말했다.

또 미라들의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한 데다 귀금속.장례 물품, 석상 등도 대거 출토되고 있어 하와스 박사는 "엄청난 보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다양한 형태의 미라들이 나오고 있어 분석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실제로 현재까지 발굴해낸 미라의 숫자만 수백개다. 특히 신분이 낮은 것으로 보이는 미라들은 단순한 리넨 천으로 감싸져 있지만 고위 관리 같은 미라들에는 황금 마스크가 씌워져 있어 발굴자들을 흥분케 하고 있다.

한편 임신한 상태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한 여성의 미라 뱃속에는 아기 미라도 같이 들어있다고 발굴팀은 밝히기도 했다.

내세와 부활을 믿었던 고대 이집트인들은 망자의 신체를 보존하기 위해 미라를 제작했다. 왕과 귀족들은 미라의 머리 부분을 보호하기 위한 황금 마스크를 만들기도 했다.

특히 약 3300년 전 이집트를 통치한 투탕카멘왕의 황금 마스크가 가장 유명하다. 그러나 일반 서민은 엄청난 비용과 수개월의 작업시간이 필요한 미라 제작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기껏해야 간단한 약품 처리 후 흰 천으로 감싸는 약식 미라 제작에 만족해야 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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