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단은" 강탈" 분통 터뜨리는데 김운용위원 "성공적 올림픽" 딴소리 스포츠외교 '엇박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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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솔직히 모르는 게 너무 많았고, 가용할 만한 인력도 마땅치 않았다."

24일(한국시간) 쇼트트랙 마지막 경기가 끝난 뒤 만난 한국선수단 한 임원의 고백이다. 그는 김동성 실격판정 이후 법적 소송 준비와 각종 대책회의로 나흘간 하루 두시간도 자지 못했다.

그러나 빼앗긴 금메달과 실추한 명예를 되찾기에 한국 스포츠의 행정력과 외교력은 역부족이었다.

한국선수단은 23일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김선수를 실격시킨 호주 심판을 제소했으나 "증거가 없다"며 기각당했다.

해당 스포츠 연맹의 규칙을 근거로 판결을 내리는 CAS는 이번 역시 "심판이 편견(bad faith)이나 독단(arbitrary)에 의해 잘못된 판정을 내렸다는 증거가 있는가"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일단 한번 내려진 판정 자체에 시비를 건 한국선수단에 CAS는 처음부터 기댈 만한 언덕이 아니었다.

박성인 선수단장은 22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폐막식 불참 검토,현지 법원에 심판 고소'까지 거론하며 날을 세웠으나 바로 다음날 김운용 대한체육회장 겸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은 "이번 올림픽은 성공적이었으며, 한국선수들은 다른 나라 선수들과 함께 대미를 장식할 것"이라고 말해 일관성을 잃은 모습이었다.

비록 러시아의 IOC위원처럼 "심판의 편파 판정과 미국 주도의 올림픽 반대"를 외치는 배짱은 없다 하더라도 '성공' 운운한 것은 지나친 외교수사라는 지적이다.

특히 기자회견 직전 김회장 측근이 선수단에 러시아의 강경 방침과 보조를 맞추라고 요구했으나 다음날 김회장이 자크 로게 IOC위원장과 통화한 후 이처럼 말을 바꾸는 바람에 결국 '너 따로, 나 따로'가 됐다. 심판 고소 계획도 CAS의 판정 한방에 금방 흐지부지됐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한국측의 대응은 훨씬 미미한 사안을 갖고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얻어낸 일본·러시아와 비교해 보면 훨씬 더 아쉬움을 남긴다. 일본은 결승도 아닌 준결승에서 자국선수가 실격한 것을 갖고도 국제빙상연맹(ISU)의 사과를 얻어냈으며, 러시아도 IOC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에게 급히 해명 서한을 만들어 보내게까지 만들었다.

IOC 위원을 세명이나 보유하고 있으면 뭐하나. 바로 이게 한국 스포츠 외교의 현주소다.

솔트레이크시티=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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