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정상회담> 부시 "김정일觀 안 바꿀것"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전세계를 상대로 북한 주민들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기 전에는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20일 한·미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나온 부시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북한의 양보 없이는 그의 대북 인식에 변화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먼저 그는 "내가 '악의 축'이라고 표현한 것은 주민이 아니라 북한 정권을 말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북한 통치자인 金위원장과 주민들을 분명히 선을 그어 차별화해 다뤄나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런 생각은 "미국이 북한에 매년 30만t 안팎의 식량지원을 해오고 있다"며 "북한 주민들에게 깊은 애정이 있다"고 역설한 대목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체제에 대해 "주민들의 굶주림을 방치하고, 투명하지도 않고 외부와 단절된 정권"이라고 평가했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체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산가족 문제를 중점 거론하고 있는 점은 눈여겨 볼 만하다.

지난 15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 이어 정상회담에서도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김대중 대통령이 기울인 노력에 북한이 하루빨리 답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로 미뤄볼 때 부시 대통령은 앞으로 북한체제를 판단하는데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확산 포기나 재래식 무기 재배치와 함께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복지▶남북관계에서 이산가족 등 인도적 문제 해결을 중요한 근거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또 한가지 주목되는 점은 부시 대통령이 이날 "레이건 대통령은 '악의 제국'이라고 표현했던 러시아의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대화를 계속했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언급을 인용한 사실이다.

정부 당국자는 "부시 대통령이 이 점을 강조한 것은 金대통령의 설득에 사실상 동의를 표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부시 대통령이 "나는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의견을 듣고자 한다"며 앞으로 金위원장에 대한 인물탐구를 좀더 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결국 부시 대통령은 북한체제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보이면서도, 미국측이 제시한 기준을 넘어설 경우 대화의 상대로 간주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평가다.

이영종 기자

부시의 김정일에 대한 발언

◇2001년

▶3월 7일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북한 지도자에 대해 회의감을 갖고 있다."

▶10월 한·중·일 언론 인터뷰="도대체 알 수 없는 사람." "약속을 지키지 않는 신뢰할 수 없는 인물."

◇2002년

▶2월 15일 중앙일보 회견="金위원장이 이산상봉을 왜 받아들이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2월 16일 KBS 회견="金위원장은 북한 주민들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2월 20일 서울 한·미 정상회담="대화를 수용하고 주민들에게 애정을 표현하기 전에는 金위원장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을 것."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