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부천 석왕사 주지 영담 스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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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불교에서는 중생을 돕는 네가지 방편으로 사섭법(四攝法)이 있다. 그중엔 이웃의 고뇌를 풀어주기 위해 이웃에 묻혀 함께 생활하면서 불법을 전하는 동사섭(同事攝)이란 게 있다. 부천 석왕사의 주지 영담(49·사진) 스님은 동사섭을 실천하는 대표적인 승려다. '멀고 아름답다'는 뜻을 가진 원미동에 자리잡은 석왕사는 보통 절의 이미지와는 완전 딴판이다. 절을 끼고 큰길이 나 있고 바로 옆에는 아파트와 주택이 숲을 이루고 있다. 게다가 경내에 어린이 집·유치원·스포츠센터·장례식장까지 들어서 있으니 속사정을 모르는 이들에겐 무척 낯설게 느껴진다. 1982년부터 이 절의 주지를 맡고 있는 영담 스님 또한 상당히 활달하고 '저돌적'인 인상이다.

- 절과 스님의 분위기가 색다릅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복지 개념을 도입했어요. 도심포교의 모델을 제공하고 싶었지요. 그리고 스님의 역할은 크게 수행·포교·공부로 나뉘어집니다. 제 적성엔 포교가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3년 전 문을 연 장례식장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개신교·천주교 신자도 이용한다.비용은 일반 장례식장의 3분의 1 수준.

- 외국인 노동자와 인연이 깊지요.

"창건 당시부터 부천 노동운동의 '메카'로 불렸어요. 절에서 운영하던 야학을 나온 노동자들이 저마다 일터에서 노동운동을 이끌었어요. 그런데 요즘 들어 우리 노동자들이 3D 직종을 기피하고 그 자리를 외국인 노동자들이 차지하면서 자연스레 관심이 외국인 노동자로 옮겨갔죠."

-그들의 현실을 보면 안타까운 점이 많겠습니다.

"우리 국민의 인식이 바뀌어야 그들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과거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미국이나 일본·독일 등지에서 얼마나 많은 서러움을 겪었습니까. 그때를 기억해야 합니다. 자칫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반한(反韓) 감정만 심어주게 됩니다."

석왕사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집엔 스리랑카·태국·미얀마 등 불교권 출신 노동자들이 수시로 드나든다. 매년 한차례 음력 7월 보름(백중)에 여는 노동자문화대잔치엔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해 1천여명이나 모인다. 그래도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법회를 열지는 않는다. 종교를 초월한 활동이라는 판단에서다.

-99년 11월부터 불교신문 사장도 맡고 계시는데.

"화·수요일 오전에만 불교신문사에 나갑니다. 가장 게으른 '지도자'가 되려고 노력하지요. 조직에 자율성을 불어넣기 위해서입니다."

- 포교 환경도 많이 변했습니다.

"주5일 근무제가 큰 변화죠. 그때를 대비해 프로그램을 준비 중입니다. 늘어난 여가시간을 노는 쪽으로 쏟아서는 곤란하죠. 시민들에게 정신적 교양과 수양에 힘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작정입니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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