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로 드러난 이형택 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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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특검이 지난달 30일 김대중 대통령의 처조카인 이형택(李亨澤)전 예금보험공사 전무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알선수재)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비리 관련 대통령 친인척의 사법처리는 이 정권 출범 후 처음 있는 일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구속영장의 범죄사실을 보면 그동안 소문으로 나돌던 李씨의 무소불위(無所不爲)행동이 대부분 사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수익의 15%를 받기로 한 보물 발굴 사업에 앞장서 당시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 엄익준 국가정보원 2차장을 통해 해경·해군 등 국가 중추기관을 동원했다. 또 전주(錢主)로 G&G그룹 회장 이용호씨를 끌어들였고 李씨는 보물 발굴 사업을 주가조작에 이용해 1백54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겼다.
이형택씨는 또 이용호씨에게 철원 군사보호구역 내 자신 소유 야산을 시가의 두배가 넘는 2억8천만원에 팔아넘겼고, 그 대가로 이용호씨가 조흥캐피탈을 인수할 수 있도록 조흥은행장에게 청탁했다.
특히 이형택씨는 진실을 숨기기 위해 야산을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인 6억원에 판다고 신문광고를 내는 한편 자신이 사들인 가격을 올리기 위해 공문서 과세표준란을 변조한 의혹까지 받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영장에 기재된 범죄사실이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점이다. 특검은 구속 필요 사유로 李씨가 자신과 가족 계좌에 입금된 거액의 출처를 제대로 대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李씨의 추가 금품수수 의혹을 뒷받침하는 부분으로 이형택 게이트의 본질일 가능성도 있다.
그런 면에서 이형택 게이트 수사는 지금부터 시작인 셈이다. 특검은 이용호 게이트 수사만 하도록 돼 있지만 그렇다고 드러난 비리 의혹을 덮을 수는 없다. 이제 특검은 이형택 게이트의 몸통 규명에 나서야 한다. 신승환씨 사건처럼 특검이 검찰에 넘겨줄 부분도 있겠지만 몇년간 뒤엉켜 지낸 사건의 성격상 이형택 게이트나 이용호 게이트의 비호·배후세력이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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