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복싱] 38세 정경석씨 "값진 2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아빠, 잘 했어요."

분 자장면 면발처럼 왼쪽 눈이 퉁퉁 부어오른 정경석(38.경산체육관)이 라커룸에 주저앉자 두 딸 가희(10)와 가원(8)이 아빠의 등을 쓸어내렸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프로권투 신인왕 도전. 25일 전북 무주 예체문화관에서 열린 제29회 전한국권투신인왕대회 웰터급 결승에서 자장면집 사장 정선수는 자신보다 열네살 어린 황교성(24.보성힐)을 맞아 1대2 판정패했다. 하지만 그에겐 못다 푼 '한'을 풀었다는 안도감이 남았다.

정선수의 꿈은 원래 복서였다. 15세 때부터 부모님 몰래 체육관을 찾았다. 그러나 비밀은 없었다. 3년도 안돼 정선수의 부모는 그 사실을 알고 격노했다.

"무작정 서울로 갔습니다.1년은 신문배달을 했죠."

배가 너무 고팠다. 권투의 꿈은 잠시 접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한 자장면 면발 만들기가 어언 20여년이 됐다. 성실한 생활 덕에 1989년 고향인 경북 경산으로 다시 내려올 수 있었다. 자신이 운영하는 자장면집 간판도 함께 가지고서.

"어느 정도 안정되니 돌연 옛 꿈이 생각나더군요."

정선수는 96년 다시 글러브를 끼었다.부인 김명호(35)씨 역시 남편이 맞고 다니는 것을 싫어했지만 말리진 못했다. 정선수는 다음해 경북 도민체육대회에 출전, 우승을 차지했다. 나이 제한 때문에 프로 신인왕전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이번 대회는 나이제한이 풀려 출전 기회를 잡았다.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두 딸과 부인의 손을 잡고 체육관을 떠나는 정선수의 얼굴에 따스한 햇살이 비쳤다.

한편 '러시아 청년' 이슬라모프 아담(20.합덕)은 미들급 결승에서 정일권(의정부 프라자)을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으로 꺾어 한국 프로권투 사상 최초의 외국인 신인왕이 됐다.

문병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