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함성호 '자장면은 전화선을 타고 온다'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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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자장면 왔습니다

자장면집 배달원이 자장면을 가지고 왔다

거기 놓으세요

가장 어린 직원이 신문지를 편다

야근을 자장면 먹듯이 하는 때

우리는 둘러앉아 자장면을 먹는다

만 사천 원입니다

덤으로 튀김만두도 가지고온 배달원은

빈 철가방을 들고 나갔다

우리는 자장면을 먹으며

자장면집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생각했다

(중략)

과연 그 자장면 집은 어디인가?

전화 걸어

"자장면"

하면, 오는

말이 이루어지는

-함성호(1963~ )'자장면은 전화선을 타고 온다'중

말을 들어보니 우리는 배달민족. 그래서 자장면 배달도 잘한다더군. 그래서 자장면 집은 어딘지 알 수도 없는데 자장면 배달만 하는 철 가방은 '신지식인'도 된다는군.배달하는 것이 어디 자장면뿐이랴.이러다가 사랑도 우정도,인생까지도 주문 배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도무지 삶의 근거가 실감나지 않는 우리 '구 지식인'들은 지금 철 가방 속에 담겨서 어디론가 배달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화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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