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1% 북한 지원에 쓰자] 中. 북한 개발 청사진 먼저 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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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부 예산 1%의 대북 지원이 북한 개발의 청사진 없이 시행된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도 있다. 북한 경제 되살리기의 밑그림이 있어야 예산 지원은 남북의 경쟁력을 함께 높이는 윈-윈(Win-Win)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KOTRA의 홍지선 실장은 "대북 예산 지원은 긴급성을 띤 한국판 마셜 플랜(2차대전 후 미국이 실시한 유럽부흥계획)이 돼야 하며,'수혈식(輸血式)'보다는 북한경제의 자생력 회복에 중점을 둔 '조혈식(造血式)' 기본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조동호 북한경제팀장은 "이제는 우리가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북한 발전 전략을 짠 후 이를 놓고 북한과 머리를 맞댈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북한 경제의 악순환 고리를 끊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

북한 개발 틀을 어떻게 짤 것인지는 난제 중 난제다. 미답(未踏)의 경지이기 때문이다.

통일연구원 최수영 연구위원은 "개발 청사진은 남북 경제상황, 경제협력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반영해야 한다"며 "인도적 지원, 사회간접자본(SOC)정비, 농업생산성 제고를 위한 방안이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도 "▶북한주민의 식량난 해소▶경제적.사회적 SOC 건설▶시장경제 등에 대한 대북 교육계획이 청사진에 담겨야 한다"고 말했다.

잘 세워진 기본계획은 국내외 기업의 대북 투자.진출의 가늠자가 되고, SOC 정비는 기업의 투자비를 줄여줄 것이다.

이와 함께 국민적 합의하에 남북 경제공동체로 가는 로드 맵(road map)을 작성하고, 이를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퍼주기''정권 활용론'의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동용승 북한경제팀장은 "국가 비전을 바탕으로 한 경협의 로드 맵이 없는 대북 예산 지원은 실효를 거둘 수 없고 오히려 부작용만 낳을 우려가 크다"며 "통일시대를 대비한 개발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북한 개발의 시너지 효과를 위해서는 국제 금융기구.외국 민간자본과의 다자적 접근 방식이 바람직하다. 통일연구원 오승렬 연구위원은 "북한 재건의 지속적인 재원을 확보하고, 우리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아시아개발은행(ADB)이 대북 자금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북 예산 지원을 위한 개발청사진.로드 맵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선 북한도 '분위기 조성'에 기여해야 한다. 특히 국제금융기구의 대북지원 열쇠는 미국이 갖고 있는 만큼 대미(對美)관계 개선은 북한이 해결해야 할 선결과제다.

결국 북한이 이런 우리의 지원책에 대해 '정치적 부담'을 갖지 않도록 하는 측면도 필요하나, 보다 중요한 대목은 북한이 국제경제의 기본원칙이나 흐름을 이해하고 이에 발 맞추는 노력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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