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볼 할아버지' 김상익" 선수들 속내 감독보다 더 잘알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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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88서울올림픽 기억나? 난 아직도 생생해. 특히 여자핸드볼에서 금메달이 확정되던 순간엔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지더라고."

검버섯 핀 얼굴에 단정하게 빗어올린 머리. 김상익(金相翼.74)씨는 '핸드볼 할아버지'다.

지난 14년간 핸드볼 경기가 열리는 곳이라면 전국 방방곡곡 어디라도 빼놓지를 않았다. 현해탄 너머 일본에도 세차례나 건너갔다. 경기장 찾는 날을 모두 합치면 1년에 대략 1백여일. 대한핸드볼협회 장면호 사무국장은 "소규모 대회 때도 관중석 한 모퉁이에는 꼭 어르신이 앉아계셨다"고 말했다.

자연히 핸드볼에 관한 지식이 해박하다. 한번 말문이 열리면 "일본에서 뛰고 있는 백원철의 슛이 가장 빨라.최고 시속이 1백34㎞야. 4백20g의 공을 그런 스피드로 던진다는 건 참 대단한 거지. 이상은은 선화여상 때부터 파워가 넘쳤어.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못 뛰는 게 가슴아파"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끝이 없다.88올림픽에서 여자핸드볼 국가대표팀을 맡았던 고병훈 감독은 "어떤 땐 나보다 선수들 속사정을 더 잘 알아 조언을 구한 적도 여러번 있다"고 말했다.

김할아버지는 황해도 태생이다. 6.25 이후 월남해 죽 인테리어 일을 해왔다. "정적인 일을 해서 그런지 격렬한 운동이 좋더라고. 그래서 핸드볼 경기장을 찾게 됐지. 사실 핸드볼 만큼 치열한 경기도 드물잖아?"

김할아버지가 본격적으로 핸드볼에 빠져든 건 88올림픽 직후부터. 그 무렵 열세살 연하의 부인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달리 마음을 둘 데가 없었던 김할아버지는 핸드볼에 정을 주게 됐다.

김할아버지는 경기가 없는 날이면 주머닛돈을 톡톡 털어 빵이나 음료수.초콜릿 등을 사들고 훈련장을 찾아가 선수들에게 나눠주곤 한다. 대구시청의 김차연(21)선수는 "워낙 자상하셔서 친할아버지를 만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협회는 핸드볼 큰잔치가 끝나는 대로 김할아버지를 핸드볼 명예위원으로 위촉할 방침이다.

최민우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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