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회견에 담긴 뜻] 성난 민심 달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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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4일 연두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였다.청와대 전.현직 참모들과 고위 공직자의 잇따른 부패 연루 혐의에 큰 충격을 표시하고 진솔한 사과의 뜻을 밝혔다.

부패문제에서뿐만이 아니다.정치현안과 인사편중.교육정책.남북관계 등을 설명할 때도 그는 '겸손한 대통령'의 모습을 유지했다.1년 전 연두기자회견에서 대대적인 언론개혁을 예고하며 '강한 정부,강한 대통령론'을 펴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정치권에선 "金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해에 직면해 있는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특히 임기 2년의 신승남(愼承男) 전 검찰총장을 중도에 퇴진시킬 수밖에 없을 만큼 부패 게이트가 확산돼,국민감정이 악화되고 있는 것도 그의 태도 변화의 요인으로 분석됐다.

金대통령은 철저한 사과 표명과 강력한 비리 척결 의지로 난관을 돌파하려 했다.경제경쟁력 강화와 서민.중산층 생활 향상,남북관계 개선이라는 기존의 '3대 국정과제'도 '부정부패의 철저한 척결'을 추가해 '4대 국정과제'로 바꿨다.그만큼 권력 핵심의 비리 문제가 국정의 성패를 좌우할 중요 과제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金대통령은 사정 관계자들을 직접 소집해 가차없이 비리를 척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앞으로 1년 동안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결심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에 따라 각종 게이트에 대한 수사가 탄력을 받아 정.관계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로 확대되리란 전망도 나온다."비리가 있다면 먼저 털어내야 한다"고 한 관계자는 말했다.그것만이 '매일 매일 터지는 무슨 무슨 게이트에 정신을 못 차리는' 위기 상황을 돌파할 방법이란 것이다.

그러나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지 않는 특별수사검찰청 구상은 이미 지난 연말 나온 것인 데다 야당측에서는 벌써 그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어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이날 회견에서 새로운 정책 제시는 없었다.임기말을 마무리하는 자세로 국정을 끌고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특히 경제.복지 문제에 대해서는 지난 4년의 성과를 설명하고,'국민의 오해'에 대해 해명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야당에 대해서는 양대 선거의 공정한 관리를 약속하며, 협조를 구했다. 총재를 그만두고 국정에 전념하면 도와주겠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그러면서 민주당 탈당이나 중립내각 구성 요구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절했다.

야당 총재와의 회동에 대해 "언제든지 만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그렇지만 더 이상의 언급은 없었다.영수회담으로 야당의 협조를 구하기엔 대선이 너무 큰 걸림돌이란 판단 때문이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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