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린씨 소설 '열정의 습관'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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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소설가 전경린(39)씨는 소설의 제목을 『열정의 습관』(이룸, 7천5백원)으로 정해 놓고 "이해하기 어려워요?"라고 묻고 또 물었다. 그리곤 "열정과 습관은 서로 상반되는 뜻이죠. 지금 우리 사회 성의 표정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요"라고 자문자답했다.

이 소설은 성(性)에 관한 소설이다. 지난해 한 석간신문에 '여성들이 원하는 성과 사랑'이란 부제를 달고 연재됐던 것으로 원고지 2백20장이던 원작을 두 배 이상 늘리고 다듬어 출간했다. 부제를 보는 순간 '여성들이여, 제도와 권력에 의해 억압된 성을 해방시키기 위해 욕망의 바다에 성의 닻을 내려라!'는 주의주장을 담은 건 아닐까 했지만 결론은 그 반대다. 그렇다고 금욕을 실천하라는 뜻은 아니고 "허리 아래 무겁게 달린 그 무엇 자체에 홀리지 말라"는 말이다.

성은 닻도 아니고 덫도 아니니 그 무겁게 내리깔리는 성을 조금 가볍게 해 자기애(自己愛)의 원칙에 맞추자는 의미로 작가는 "정신의 육체화, 육체의 정신화"라는 표현을 내밀었다. 성(性)이야말로 마음(心)이 사는(生)일인 것이다.

소설에는 30대 후반의 세 여성 미홍.인교.가현이 우리 시대 여성의 성 풍경을 구성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각기 다른 성 경험과 남성 편력을 가지고 있지만 꿈꾸는 바는 하나다. 아이 셋 딸린 과부를 돌봐주다 한 방에서 지내게 된 신부님의 에피소드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신부복을 벗을지언정 몸이 마음을 속이지 않고 마음이 몸을 배반하지 않는 풍경이다(1백68~1백71쪽).

작가는 "일산에서 서울갈 때 환승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다녀오면 차창에 성매매 광고지가 많이 붙어 있었어요. 우리 시대에 성은 너무 가까이에서 남루하게 존재해요"라며 "주위 사람을 취재해보니 성 때문에 겪는 질환은 몸과 마음 둘 다의 문제였음을 깨달았죠"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은 성의 풍속도를 그리며 힘차게 달려가다 후반부에서 문득 멈춰 버리는 느낌을 준다. 여성이 읽으면 "아!"하고 남성이 보면 "어?"할 정도로 성에 얽힌 여성의 심리.사건.환상을 그려내다 후반부에 가면 모두에게 "응~"하는 느낌을 준다고 할까. 예컨대, 열아홉살의 미홍이 남자의 성기를 처음 손에 쥐었을 때의 느낌을 묘사한 소설 도입부와 정신성의 영역을 강조한 후반부의 비대칭성처럼.

작가에게도 아직 성은 파괴의 힘이 넘쳐 재빨리 문 닫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일까.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성에 대해 말하면 말할수록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은 이제 더 이상 에로틱하게 여겨지지 않을 만큼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있죠. 그런데 소설 중반부를 쓰면서 무턱대고 발산하기보다 지켜가는 모습이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성의 리얼리티를 확보하려면 의식적으로 성을 의식해야 해요."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전씨는 96년 『염소를 모는 여자』로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뒤 활발한 작품활동으로 30대 여성 작가군의 대표자 중 하나로 부각됐다.

우상균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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