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류들의 24시] 미국 건축허가 공무원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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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미국 건축허가 공무원들의 경쟁력은 철저한 공사감독 외에 '무조건 안되게 하기보다 가능하면 일이 되도록 도와주려는 자세'에서도 나온다.

건축허가 담당 공무원들은 민원인이 허가신청서를 낸 후 20일 내에 1차 회신을 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20일동안 서류에서 보완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될 수 있으면 허가가 나오도록 도와주자는 취지에서다.

권한과 책임의 한계설정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건축공무원이 자신의 권한을 최대한 행사하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지만 권한 남용에는 매우 엄격하다.

지난해 뉴저지주 클로스터 타운에서 한 민원을 처리한 과정이 대표적인 예다.

민원인은 1950년에 지은 자신의 집을 허물고 두 세대가 살 공동주택을 신축하기 위해 건축허가 담당 공무원을 찾아 갔으나 "규정상 1950년 전에 지은 건물만 해당이 되므로 그 후에 세운 건물은 재건축을 허가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듣고 실망해 돌아갔다.

그러나 담당 공무원은 거절 답변을 한 후 손을 놓고 있지 않았다. 규정대로 처리하긴 했지만, 지나치게 경직된 일처리였다고 느낀 것이다.

그는 "허가 기준 시점을 1950년 전으로 못박음으로써 억울한 재산상의 불이익을 야기하는 만큼 기준시점을 보다 탄력적으로 운용하자"고 시장에게 건의했다.

시장도 이에 공감해 타운의회에 관련법 개정안을 건의해 관철시켰다. 주민 입장에서 '일이 되게끔' 처리하는 공무원 덕분에 이 민원인은 1년만에 건축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규정에만 얽매이지 않으려는 공무원의 재량과 시장.시의회의 유연한 정책판단이 맞물린 결과다.

민원인 단 한명의 일로 치부해버리고 말았다면 시의회가 소집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도시 규모에 맞추어 건축 공무원들의 업무 한계를 설정한 것도 눈여겨 볼 만하다.

조그마한 타운의 경우 큰 공사가 거의 없기 때문에 건축허가 담당 공무원들의 자격증을 2등급으로 묶어 놓고 있다. 1등급이 요구되는 대형 공사는 주정부로 바로 가지고 가서 허가문제를 해결하라는 의미다.

이는 건축업자들에게 상당한 실무적 도움을 준다. 일선 지자체부터 주정부까지 단계마다 행정절차를 밟는데 드는 시간과 정력이 절약되기 때문이다.

건축공무원 개개인이 자신의 전문성과 경력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물론 업자들의 유혹도 있지만 거기에 넘어갈 경우 자신의 경력.명예는 물론 퇴직후 연금까지 모두 날아가기 때문에 거의 빠져들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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