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역주의를 조장하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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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올해는 TK(대구.경북)가 분발해야 한다"(김수한 전 국회의장),"우리 고장이 제 몫을 찾을 해다"(김준성 전 경제부총리)→"충청도 대통령이 꼭 선출되도록 하자"(유근창 충우회장),"역사상 첫 충청 대통령이 나올 것이다."(김용래 충청리더스회장)

이번주 재경 대구.경북인 신년회와 재경 경북고 신년회, 재경 충청권 향우회 신년회에서 이런 다짐이 넘쳤다고 한다. TK 모임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참석했고, 충청 모임에선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민주당 이인제 고문이 나와 고향사랑의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주최측에선 이런 말들에 대해 순수한 애향심(愛鄕心)의 발로이고, 새해에 잘 해보자는 덕담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외부에는 "대선 때 우리 힘을 과시하자""고향사람을 대통령으로 밀어주자"는 배타적 결의로 비춰질 수 있다. 올해 대선도 별 수 없이 지역대결로 흘러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낳게 하는 장면들이다.

이런 발언들은 벤처 게이트로 화난 민심을 불편하게 한다. 권력과 벤처의 결탁에는 '형님,동생'하는 온정(溫情)주의가 깔려 있고, 지연(地緣).학맥(學脈)으로 연결된 봐주기.덮어주기의 추잡한 모습이 드러난다. DJ정권 쪽의 '특정지역 편중 인사와 뭉치기'논란에 질렸다면서 자기쪽 고장의 모임에서 그와 유사한 '끼리끼리'의지를 표시하는 듯한 장면들은 대다수 국민의 눈에 거슬린다.

정치권에선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릴 조짐이다."TK는 10년 공백이 있는 만큼 당권.대권의 분리가 없으면 표를 몰아주기 어렵다. 뭉쳐야 한다"는 한나라당 김만제 의원의 발언은 TK궐기의 외침으로 들릴 만하다.'TK 세력화'논란은 지역감정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는 구태의연한 정치행태다. 민주당의 '영남 후보론, 호남 단합론, 충청 결집론'도 마찬가지다.

선거 때면 '망국적 지역주의의 퇴치'를 외치면서,다른 편으론 지역감정을 교묘히 자극하고 이에 영합하는 이중적 행태가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다. 정치인과 사회 지도급 인사들의 끊임없는 자기성찰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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