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국가 이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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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사람의 인격이 각자 다르듯 나라마다 독특한 인상이 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한 국가의 이미지는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고 굳어진 총체적 품격이라 할 수 있다.

엊그제 파리에서 날아온 외신 두가지는 프랑스가 어떤 나라인지를 잘 보여준다. 빅토르 위고 탄생 2백주년을 맞아 초.중.고 학생들의 새해 첫 수업을 위고의 작품으로 시작한 것과,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은퇴에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는 소식 말이다. 대문호 위고야 그렇다 쳐도 생 로랑이야 우리로 치면 앙드레 김 정도일텐데, 죽은 것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요란을 떤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문화와 예술에 대한 프랑스 사람들의 사랑은 잘 알려진 대로 유별나다. 그래서 이제 '프랑스=문화국가'란 등식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한 늙은 여배우의 개고기 시비로 심사가 뒤틀리고, 그래서 그들이 즐기는 달팽이나 말고기를 '비문화적'이라고 쏘아 붙이는 우리지만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이는 무엇보다 국가가 각종 문화 혹은 문화인 우대 정책을 통해 문화국가로서의 이미지를 다져왔기 때문이다.

프랑스뿐이 아니다. 선진국들은 대개 나름대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나치 때문에 스타일을 구기긴 했지만 독일 하면 그래도 정확.질서.단결 같은 덕목들이 떠오른다. 영국은 전통과 신사의 나라로 통하고 미국이 청바지로 대변되는 합리주의의 나라라면, 일본은 청결하고 친절한 나라라는 이미지가 굳었다. 다 국민과 국가가 오랜 기간 여러 형태로 이미지 메이킹을 해온 결과라 하겠다.

우리는 어떤가. 유감스럽게도 한국이 유구한 역사를 가진 문화국가라는 사실을 밖에선 잘 모른다. 대신 최근 경제위기를 겪었지만 잘 극복한 신흥공업국,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 언젠가 올림픽을 치렀고 올해 월드컵을 치르는 나라 정도로 알고 있다.

그나마 이는 아주 후한 평가다. 아직 남북으로 갈려 싸우는 나라, CNN 덕분이기도 하지만 거리에 화염병이 난무하고 경찰과 시위대가 격렬한 시가전을 벌이는 성미 급한 사람들의 나라, 여기에다 최근엔 개고기 먹는 나라에다 조폭과 게이트가 판치는 나라라는 이미지까지 추가되고 있다.

그래도 누구 하나 국가 이미지에 신경쓰는 사람이 없다. 특히 주무부처인 국정홍보처마저 요즘엔 통 말이 없는 것 같다. 한국에 언론탄압이 없다고 전세계에 대고 박박 우기던 그 기백은 다 어딜 갔나.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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