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커라니요. 이젠 보안 전문가입니다."
암호.인증전문 보안업체인 이니텍의 정석근(26)책임연구원의 전직은 해커다.
그는 1996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포항공대 학생들간에 벌어졌던 '해킹 전쟁'을 주도해 벌금형까지 받은 경력(?)을 갖고 있다.
당시 벌어졌던 해킹 전쟁은 두 학교 학생들이 서로 '최고의 대학'이라며 논쟁을 벌이다 상대 학교의 컴퓨터에 침입해 각종 파일을 삭제한 사건. 이를 계기로 해킹이란 말이 널리 퍼지게 됐다.
"그때는 해킹을 취미활동 비슷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때의 경험이 저에겐 기술적으로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전북과학고를 거쳐 94년 KAIST 물리학과에 입학한 그는 컴퓨터의 매력에 이끌려 2학년 때 전산학과로 옮겼다. 이후 학내 프로그래밍 동아리인 '스팍스'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해커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치기였다는 생각도 들지만, 당시에는 풀릴 것 같지 않은 난공불락의 네트워크 방어막을 풀어냈을 때 느끼는 감동과 성취감이 대단했어요."
그는 97년 졸업 후 대기업의 좋은 자리를 마다하고 대전에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보안회사 이니텍에 입사했다. 당시 인터넷 보안은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자신의 해킹 경험을 토대로 이 분야의 가능성을 예견했다고 한다.
"해킹의 도덕적인 문제와 경제적인 의미 등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해킹에서 배운 노하우를 보안 쪽에 투자한다면 훨씬 효율적일 거라 생각했지요. 해킹을 막는 것 또한 재미있는 일 아닌가요."
김창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