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주도 장세는 '일단 멈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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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최근 외국인과 함께 '쌍끌이'장세를 이끌었던 기관 투자가들의 매수세가 주춤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이후 7일동안(거래일 기준)4천5백92억원어치를 순매수했던 이들은 7일 하루 동안 2천억원 이상을 팔아치웠다. 이같은 매도 규모는 근 한달 만의 최고치다.

얼마 전까지도 "드디어 기관화 장세가 왔다"는 분석 보고서를 잇따라 냈던 증권사들 역시 신중한 입장으로 돌아서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기관들의 매수세가 확산되기 위해선 좀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 매수여력 달리는 투신, 신중한 태도 보이는 연기금=먼저 기관투자가 중 비중이 가장 큰 투신권의 사정이 여의치 않다. 주가가 뛰면서 주식형 수익증권으로 자금이 유입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투신협회에 따르면 주식 편입비중이 60% 이상인 '주식형 수익증권'의 잔고는 최근 한달사이 총 4천8백32억원, 편입비중이 50% 이하인 '채권 혼합형'은 3백3억원이 증가했다.

하지만 편입비중이 50~60%인 '주식 혼합형'은 6천77억원이 오히려 감소했다. 결국 투신권의 주식매수 여력은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대한투자신탁운용 이기웅 주식운용본부장은 "기관화 장세가 되려면 일단 돈이 들어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며 "당분간 기관들의 '게걸음 전략'이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본부장은 "연말과 연초에 주가가 오르자 장기증권저축을 들었던 고객들이 '이 정도면 됐다'며 환매에 나서고 있다"며 "비록 이 자금이 다시 주식시장으로 들어오는 대기성 자금이라 하더라도 당장 투신으로선 부담스런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6천8백억원을 순매수, 기관 중 유일하게 매수우위를 기록했던 연기금도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연기금 중 가장 규모가 큰 국민연금은 "당분간 신중한 투자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조8천억원 가량이었던 주식투자 규모를 올해 1조2천억원으로 30% 이상 줄인 데다,'연기금'의 성격상 장이 좋다고 무턱대고 뛰어들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한승량 투자전략팀장은 "최대한 주가가 빠질 때를 기다려 우량주를 살 것"이라며 "1월에 사들일 주식물량을 그렇게 많이 설정해 놓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다만 지난해 실적이 좋았던 은행들은 공격적인 매수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다.

◇ "본격적인 매수까지는 시간 필요할 듯"=삼성투신운용 유중열 영업기획팀장은 "현재 투신권에 있는 돈들은 거의 단기 자금"이라며 "최근의 기관의 순매수가 단기적 또는 일회성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과거 대세 상승장에서의 흐름과도 차이가 난다는 지적도 있다.

동양종금증권 허재환 연구원은 "대세상승기였던 1999년초 당시에는 ▶1월 4천4백5억원▶2월 2조4백83억원▶4월 5조원 등 자금이 투신권에 급격히 유입됐다"며 "그러나 현재는 신규자금의 유입이 미미하고 유입 속도도 과거 기관화 장세에 훨씬 못미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신경제연구소 신용규 수석연구원은 "장이 호전됨에 따라 은행예금 등 대기성 자금이 유입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은행예금 중 1~2%만 기관에 유입돼도 기관의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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