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갑·이인제 감정의 골 더 깊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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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4일 오전 민주당 당무회의장.한화갑(韓和甲).이인제(李仁濟)고문은 공교롭게도 옆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악수는커녕 20여분간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서로 상대방에게 눈길을 안주려고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총재직 사퇴 이후 두달 만에 치열하게 벌어졌던 민주당 내분사태는 4일 오후 극적인 봉합을 이뤘다. 韓고문 편을 들던 쇄신연대가 입장을 바꿔 당무회의 표결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당무회의는 李고문측이 다수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당 관계자는 "韓.李고문이 서로에 대한 감정이 워낙 악화돼 후유증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자간의 갈등의 뿌리가 그만큼 깊다는 뜻이다.

韓고문의 측근 의원은 "우리는 수십년간 민주화 운동을 하고,당을 지키면서 피땀을 흘렸다. 그런데 '셋방살이'를 들어왔던 李고문이 후보가 되면 당의 정체성은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 韓고문은 뿌리론을 강조하고 있다. 또 다른 관계자도 "李고문은 지난 대선때 金대통령과 싸웠고,YS로부터 정치를 배웠다"며 이질감을 표시했다.

李고문측도 서운하긴 마찬가지다.지난해 10월 모 시사주간지에는 "꿔온 사람(이인제)에게 후보를 줄 수는 없다"는 韓고문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李고문은 이걸 읽고 "어떻게 같은 당 동료에게 그런 표현을 쓰느냐"며 격노했다고 한다.

李고문 측근 의원은 "이인제가 민주당을 위해 헌신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뿌리론이니 뭐니 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밀어내려고 하지 않았느냐"고 비난했다.

1998년 9월 李고문이 국민신당을 이끌고 국민회의와 합당했을 때만 해도 두 사람은 원만한 사이였다. 하지만 동교동 구파의 권노갑(權魯甲)전 고문과 신파인 韓고문 사이가 벌어지면서 덩달아 韓-李고문 사이도 나빠졌다. 權전고문이 당에 뿌리가 없던 李고문을 '차기 대통령감'이라며 후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2000년 8월 30일의 전당대회는 韓.李 사이를 갈라놓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당시 韓고문은 1위, 李고문은 2위를 했다.

"'꿩잡는 게 매'인데 정권 재창출이 당에 대한 가장 큰 봉사"(李고문측),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데 누가 이 당의 적자냐"(韓고문측)는 양쪽의 인식차는 쉽게 좁혀질 것 같지 않다.

김종혁 기자

사진=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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