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손님'들 무의탁 노인 찾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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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할머니들 안녕하세요."

성탄절인 지난 25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진동 '인보의 집'에 반가운 손님들이 몰려왔다. 연고나 혈육이 없는 76~91세 할머니 20여명이 살고 있는 이곳에 분당 내정초등학교(교장 崔正基)학생 20여명이 찾아온 것. 어린이들은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각자 들고 온 선물꾸러미를 내려놓고 빗자루.걸레 등을 들고 방.거실.식당을 쓸고 닦았다.청소를 마친 어린이들은 준비해 온 떡.과일.과자 등 간식을 내놓고 할머니들을 대접했다.

이어 김경옥 원장에게서 "할머니들이 '남행열차' 노래를 좋아하신다"는 얘기를 들은 어린이들은 '남행열차'를 합창하는 등 장기자랑을 펼쳤다. 노래가 끝나자 할머니들도 '과수원 길'을 부르며 어린이들의 재롱에 답했다.

김안나(83)할머니는 "오랜만에 손녀같은 아이들의 재롱을 보니 너무 즐겁다"며 눈물을 훔쳤다.

어린이들은 또 저금통을 털거나 용돈으로 마련한 털신.머플러 등 선물을 할머니들에게 전달하고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 카드도 할머니들의 손에 쥐여드렸다. 어깨.팔 등 안마도 해드렸다.

이날 학생들의 방문은 이 학교 임정선(林靜仙.42)교사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林교사는 "방학을 맞아 어린이들에게 뭔가 보람있는 일을 할 기회를 줘야겠다는 생각에 희망자를 모았다"며 "아이들의 반응이 좋아 내년부터는 한달에 한번 정도 봉사활동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봉사활동이 처음이라는 6학년 박수정(12)양은 "할머니들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벅찼다"며 "이제부터라도 부모님께 효도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할머니들,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셔야 돼요."

아이들의 작별 인사에 할머니들은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문밖까지 나가 멀리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정재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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