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간접 성차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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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경쾌한 음악과 함께 예쁜 여성(고소영)이 남자들의 엉덩이를 탁탁 치며 걸어간다. 세번째 사람의 엉덩이를 쳤는데, 알고 보니 그는 여자 청원경찰. 모델은 쑥스러운 듯 미소짓는다.-요즘 방영 중인 한 신용카드 회사의 TV광고 장면이다.

이 광고는 1960년대 말 레브론사가 내놓은 '찰리'라는 향수제품 광고를 연상케 한다. 찰리 광고사진은 함께 등장하는 남자모델보다 키가 더 크고 자신감도 넘쳐 보이는 젊은 여성이 남자의 엉덩이를 탁 치는 장면을 부각했다.

서양의 엉덩이 치기는 운동경기에서 선배가 후배를 격려할 때 쓰는 남성들만의 몸짓이다. 그러나 광고에선 남자들의 엉덩이가 여성들의 '손찌검'의 대상이 됐다. 페미니즘적 광고 덕분에 찰리는 여성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어 한동안 세계 1위의 판매고를 자랑했다.(제임스 트위첼 저,김철호 역 『욕망.광고.소비의 문화사』)

이들 광고에서의 엉덩이 치기는 '튀는' 동작이다. 튄다는 것은 상식이나 기존 질서에의 도전 내지 반란이다. 따라서 광고는 역(逆)으로 남성우위 사회의 완강함과 고루함을 웅변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찰리로 선풍을 일으킬 당시 레브론사는 여직원의 바지차림 출근을 금지하고 있었다.

국무회의가 지난 18일 '간접 성차별'개념이 도입된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법 개정안'을 의결한 것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간접차별이 법안에 반영된 것은 남녀고용평등법에 이어 두번째. 여성개발원 김엘림 수석연구위원은 간접차별을 "표면적으로는 남녀에 동일기준을 적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신장 몇㎝ 이상'처럼 직무수행과 관련없는 채용조건을 내세워 한쪽 성을 차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977년 미 앨라배마주 교도소가 '키 5.2피트(1백58.5㎝), 몸무게 1백20파운드(54.4㎏) 이상'이라는 채용조건을 내세웠다가 한 여성 교도관지망생으로부터 소송당해 패소한 사례가 유명하다고 한다.소송 과정에서 미국여성의 41.1%가 이 조건에 미달하는 것으로 밝혀졌고,교도소는 신장.체중 규정이 교도관 업무와 밀접한 관계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해 결국 패했다.

물론 직접차별이든 간접차별이든, 광고 속의 고소영씨처럼 아무 남자 엉덩이나 치고 다닌다고 성차별 문제가 해소될 일은 아니다. 자칫하면 남자가 발끈해 성희롱으로 고소할지도 모르겠다.

노재현 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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