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손을 맞잡은 두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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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손과 손을 둥글게 맞잡은 물방울이 수채화 속 휘어진 세상을 담아든다". 올해 중앙신인문학상을 탄 김보영씨의 시조 '컵'의 첫 구절이다. 이 시구(詩句)에 내후년 봄 취임식에서 두 손을 맞잡은 두 대통령의 모습이 떠올랐다.

*** 옛 정권 두들기기 불보듯

최근에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지금 이미 내년 이맘 때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김칫국부터 마신 대선주자들이 철 이른 개구리 튀어나오는 듯하고 이에 질세라 "이런 대통령을 뽑자"는 얘기가 버젓이 나돈다. 또 대통령의 수족이어야 할 공무원들은 그들대로 대선주자나 정당에 줄대기 바쁘다고 하고, 뜬금없는(?) 소문과 어지러운 폭로가 정권의 손발을 묶고 있다.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이다. 이대로라면 정확하게 1년3개월의 국정 공백이 생기게 된다.

집권자가 레임덕을 섭섭하게 생각하는 건 인지상정이다.그래서 과거 모든 대통령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영향력을 다시 틀어쥐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각하, 지금 손을 떼면 다음 정권에서 당합니다" "다시 쥐어야 합니다" "각하밖에 나라를 구할 분이 없습니다"는 주변 인물의 속닥거림에 정치에서 손을 떼고 민생에 전념하겠다던 그 분들의 결의가 흔들리곤 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다 본 대로다. 대선후보마다 그 분들과 거리 두기에 바빴고, 선거가 끝나자마자 그 분들은 옛 정권 두들기기에 제물이 됐다. 자기 당 후보가 당선이 돼도 오십보백보였다. 권력이야말로 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死 死卽必生)인 것 같다.

레임덕은 대통령 개인뿐 아니라 나라에도 불행이다. 국정표류 때문이다. 총체적 부실을 말끔히 털어내지 못해 경제 사회 곳곳에 위기의 지뢰가 깔려 있을 때 그 불행은 더욱 커진다.

이대로 가면 내후년 신정부가 내놓을 '국민의 정부'평가서는 보나마나다. 나라가 재정위기라는 새 나락에 빠졌고 개혁도 숫자로만 추진됐을 뿐 속사정은 옛 그대로라고 할 것이다. '언론과의 전쟁'으로 민주화는 후퇴했고 시장경제를 되살리기는커녕 정부 개입이 더 늘었다고 평가서는 역설할 것이다.

지금 정권이 걱정해야 할 것은 레임덕 그 자체가 아니다. 레임덕 고착에서 비롯될 수 있는 그런 역사적 평가다.

레임덕은 막아야 한다. 대통령 개인의 오늘을 위해서가 아니다. 나라의 내일을 위해서다.

국정 운영에 발휘해야 할 대통령의 권위는 국민의 지지에서 비롯된다. 권력 누수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는 것이고,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을 수 있는 방법은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맡긴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뿐이라는 얘기다.

국민은 지금 대통령에게 어떤 일을 기대할까. '국민의 정부'가 경제위기 속에서 태어났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니 경제위기가 있었기에 '국민의 정부'손으로 정권이 저절로 굴러들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지금은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정권 창출의 그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총체적 부실을 털어내 위기의 뿌리를 뽑고 경제가 혼자서도 다시 뛸 수 있도록 탄탄한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 무언중에 국민이 '국민의 대통령'에게 위임했고 지금도 기대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다음 대통령에게 안겨주는 부담을 줄이도록 애쓰는 것은 누가 되든 다음 정권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나라살림을 다시 건전하게 만드는 것이 그 핵심이라는 건 누구보다 지금 대통령이 잘 알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 세대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한다면 이를 수용하지 않을 한국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 건전한 나라살림 인계를

"나라를 경제위기의 나락에서 구했고, 어려움 속에서도 개혁을 흔들림없이 추진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틀을 바로 세웠다"는 '국민의 정부 5년 국정평가서'를 읽고 싶다.

그래서 새 대통령 취임식에서 '손과 손을 둥글게 맞잡은 물방울'처럼 환한 미소로 두 손을 맞잡고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세요"를 주고 받는 두 대통령의 모습을 한번 보고 싶다.

김정수 <논설위원겸 경제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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