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이렇습니다] 한·중·일 투자협정 왜 늦어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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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23일 서울에서 한국·중국·일본 통상장관이 만나 한·중·일 투자협정을 연내 타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자고 합의했다. 사실 3국 간의 투자협정은 이미 2007년 1월 3국 정상회담에서 추진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태국에서 열렸던 3국 통상장관회의에서도 “2010년 초까지 3국 투자협상에 실질적인 합의를 이루자”고 의견을 모았다. 투자협정을 위한 3국 간의 회의도 지난 3년간 10차례나 열렸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늦어지고 있는 것일까.

‘올 초 합의’에서 ‘연내 합의’로 목표시한이 늦어진 것은 투자협정을 둘러싸고 3국 간의 복잡한 셈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은 중국·일본과 양자 간의 투자협정(BIT)을 맺고 있다. 투자협정엔 ▶해외투자자에게 내국기업과 동등한 대우를 보장하고 ▶사업해서 번 돈을 자유롭게 송금할 수 있도록 하며 ▶법령이 새로 만들어지거나 바뀔 때 미리 알려줘서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주로 담겨 있다.

2003년 체결된 한·일 투자협정은 투자자유화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협정이다. 이에 비해 한·중 투자협정은 개도국인 중국의 입장을 감안해 낮은 수준에서 체결됐다. 중국과 일본도 1989년 양자 투자협정을 체결했다.

통상 당국자는 “한국과 일본이 투자협정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중국을 설득하는 형국”이라며 “특히 중국과 오래전에 양자협정을 맺은 일본이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한국도 기존 한·중 협정에서 빠진 지적재산권 보호 등의 조항을 집어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3국 투자협정의 수준은 높은 단계인 한·일 협정과 낮은 단계인 한·중 협정 사이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양국 간의 BIT에도 불구하고 3국 투자협정이 따로 추진되는 것은 동북아 지역협력에 대한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한·중·일 동북아 3국은 동아시아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70% 이상과 세계 총 교역량의 16%를 차지한다. 하지만 유럽연합(EU) 등에 비해 눈에 띄는 지역협력의 틀이 없다.

결국 중국이 얼마나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중요하다. 중국은 3국 투자협정이 향후 미국·캐나다 등과의 협상에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신경 쓰고 있다.

낮은 수준의 투자협정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 향하는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넘쳐난다는 점도 문제다. 투자협정은 결국 외국인 투자를 많이 유치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중국은 좀 느긋하다. 통상 당국자는 “3국 장관이 연내 합의하겠다고 한 것은 중국의 입장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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