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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 잘린 엄마·아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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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랬던 그가 백수가 됐다. 30대에서 40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회사가 인수합병되면서다. 아내와 4명의 자녀를 책임진 가장의 실직. 혼란의 연속이었지만 여기서 그는 큰 깨우침을 얻었다.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가기보다는 늦더라도 천천히 둘러보며 걸어야 할 때가 있음을.” (나이절 마쉬, 『마흔에 잘린 뚱보 아빠』)

물론 그는 1년 후에 다시 일자리를 구했다. ‘세계에서 가장 어두운 날’(지구에서 1년에 1시간 전깃불 끄기) 운동을 주도한 ‘지구 시간(Earth Hour)’의 공동 창시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좌절을 딛고 새 인생을 산 후련한 얘기지만 이 스토리, 호주 대륙에서 한참 북쪽인 한반도로 오면 씁쓸해진다. 이 땅의 현실과 너무 대조돼서다. 30대부터 패자부활전이 힘든 현실 말이다.

통계청의 4월 고용 동향을 보면 한 수치가 눈에 걸린다. 30대 취업자 수 582만7000명이다. 2005년에 비해 29만5000명(5%)이나 줄었다. 20대 청년 취업자 수도 이 기간에 12.6%(47만2000명) 감소했다. 반면에 40대 이상 취업자 수는 이 기간에 모두 늘었다. 20대 취업의 감소는 예상했던 바다. 이들의 경제활동참가율은 63.8%에 그친다. 좀 더 기회를 노리며 취업전선에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30대는 얘기가 다르다.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93.4%나 된다. 웬만하면 다 취업전선에 나왔다는 얘기다. 이 중에 89%만 일자리가 있다. 여성은 다른 측면으로 심각하다. 30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4.9%에 그친다. 20대(63.3%)는 물론이고 40대(66.4%), 50대(58.5%)보다 낮다. 취업 전선에 나와도 둘 중의 한 명(53.4%) 정도만 일자리를 잡는다.

30대 취업자가 줄어든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무직이었던 20대가 세월이 흘러 30대로 접어들었거나, 직장 생활에서 벌써 실패를 경험했을 수 있다. 여성의 경우 양육 문제 때문에 직장을 포기했을 가능성도 크다.

30대는 나라 경제의 큰 뿌리다. 20대가 잔뿌리라면 30대는 나무를 떠받치는 중심 뿌리다. 굵은 뿌리가 약해지면 나무는 휘청거린다. 이런 30대 취업자가 점점 줄어드는 건 심각한 문제다. 이들이 활기차게 일하도록 제도가 뒷받침돼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도 기업들의 인력채용 때 나이 제한은 여전하다. 최근 기업 인사담당자 236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7%가 채용 때 연령 상한선이 있다고 답했다. 평균 상한선은 남성 30.5세, 여성 28.4세. 버스를 타고 가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다른 버스로 갈아탈 수 있어야 한다. 일자리를 찾는 30대에게 필요한 건 이런 환승티켓이다.

김종윤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