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도는 무기 첨단화] 中. 새는 국방예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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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방부가 추진 중인 수십조원대의 대형 무기구매사업 가운데 상당수가 당초계획보다 연기되면서 무기획득 절차의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로비로 인한 잡음 등은 아직 불거지지 않았지만, 사업 우선순위 등에서 원칙이 불분명하다는 점이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우리 군은 미국식을 본따 만든 '국방획득관리규정'에 의거, 무기를 도입하지만 실제업무는 뚜렷한 원칙 없이 이뤄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선 어떤 무기를 언제 사겠다고 하는 '소요제기'에서부터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

육.해.공군이 서로 묵시적으로 할당된 예산을 사용하기 위해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무기를 사달라는 요구서를 합동참모본부에 올리는 것이 한 예다.

육군의 K1A1 개량전차사업이 이같은 예로 꼽히고 있다. 1조여원을 들여 앞으로 10년간에 걸쳐 생산될 이 전차 2백여대가 상대할 북한군의 신형전차 '천마'는 50대뿐이다.

게다가 우리는 '천마'를 파괴할 수 있는 공격헬기 등 다른 무기를 갖고있다. 따라서 이 전차를 2백여대나 보유한다는 것은 낭비의 요인이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북한의 신형전차 증가 가능성에 장기적으로 대비하고 우리 군의 구형전차를 대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3군으로부터 제기된 무기요청을 교통정리해야 할 합참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된다.

지난 11월 열린 군 수뇌회의에서 차기전투기(F-X)선정사업은 내년 상반기로, 공중조기경보기(AWACS)는 2008년으로, 공중급유기(KC-X)사업은 무기한 연기하기로 결정한 것이 그 사례다.

대당 1천억원 나가는 차기전투기를 독도나 동지나해 등 원거리작전에 활용하려면 공중조기경보기와 공중급유기가 필수적인데도 구매시기가 제각각이어서 첨단무기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없게 된다는 게 군사전문가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 최동진(崔東鎭)획득실장은 "이런 F-X상의 전술적 문제를 인식해 최근 공중조기경보기는 2005년부터, 공중급유기는 예산이 확보되는대로 착수키로 다시 조정했다"고 말했다.

일부 무기획득업무 담당장교들의 전문성 결여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2년마다 보직을 옮겨다니는 바람에 전문지식을 쌓기가 어려우며 전문지식의 부족으로 예산을 낭비하는 사례도 있다는 것.

무기구매 대가로 외국업체가 제공하는 기술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긴요하지 않은 기술을 들여오는 것이 그 사례다.

국방부에 따르면 1983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이런 방식으로 60억달러어치의 기술 등을 제공받았으나 실제 활용된 것은 42억달러이며 나머지 18억달러어치는 사장(死藏)된 것으로 집계됐다.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도 비용증가의 원인이다. 미국은 모든 무기개발계획을 공개해 벤처기업까지 참여시켜 기술을 개발하고 비용을 줄이도록 한다.

그러나 우리 군은 무기개발계획인 '국방과학기술계획서'를 군사기밀(2급)로 묶어놔 일반업체는 접근조차 할 수 없도록 차단하고 있다.

김민석.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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