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롤모델의 어린시절③ - 버락 오바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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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혼혈이라는 출생적 특징과 부모의 이혼 속에서 어린 시절 방황했다. 그러나 결국 자신 앞에 놓인 수많은 벽들을 뛰어넘어 스스로 미국의 희망과 변화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그는 어떻게 세계를 이끄는 최고의 리더가 됐을까?

혼란스러웠던 유년기
오바마는 아프리카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미국 캔자스 출신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결혼한 지 2년 만에 부모님은 이혼한다. 오바마는 이후 인도네시아인과 재혼한 어머니로 인해 낯선 인도네시아에서 생활하게 된다.

인도네시아에서 오바마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으며, 소극적이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친구들의 따돌림도 견뎌야 했다. 어느날 오바마는 이웃에 사는 또래 친구들을 따라 갔다가 친구들이 이유 없이 밀치는 바람에 늪에 빠지고 말았다.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편안하고 행복했지만, 집 밖에서는 어린 오바마가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이런 오바마에게 새아버지는 “너 스스로를 보호할 줄 알아야해.”라는 말을 하며 운동을 시켰다. 오바마는 힘들고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하나씩 배워나갔다.

방황을 도약판으로 삼아
10살이 되던 해 오바마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계시는 하와이로 가게 된다. 오바마의 어머니는 인도네시아에 살면서도 오바마의 미래를 위해 미국에서 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바마는 하와이에서 최고의 명문사립학교인 ‘푸나호우’에 입학한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생활 또한 평탄치 않았다. 대다수의 백인 아이들은 흑인 아이들을 대놓고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친구처럼 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재밋거리로 한 번씩 놀릴 뿐이었다. 그 사이 어머니는 인도네시아 새 아버지와 이혼을 했고 하와이로 돌아왔다.

오바마는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내적으로 혼자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부터 백인 중심인 미국에서 흑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까지 혼란스러운 질문들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떠올랐다. 해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런 정체성의 혼란으로 오바마는 청소년시절 마약과 술에 빠진다. 이때 방황하는 그를 붙잡아준 사람은 바로 어머니였다. 그는 오바마를 마음으로 위로하고, 미래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용기를 얻은 오바마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싸워나갔다. 그리고 정체성의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했다. 아버지의 나라인 케냐 여행을 통해 돌아가신 아버지를 마음속으로 만나고, 자신의 뿌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 또 ‘세상에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유익한 사람이 되겠다’라는 꿈을 가지고 생활 속에서 열정을 쏟았다. 자신을 향한 끊임없는 고민과 꿈을 향한 확고한 열정은 그를 미국 최초의 흑인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글=송유정 영광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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