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직전 미대사 “신군부 군 투입 필요성 이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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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미국이 당시 ‘신군부 측의 군 투입 비상계획 수립을 막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던 것으로 전해졌다.

5·18 관련 외교문서를 발굴해온 미국의 탐사 저널리스트 팀 셔록은 17일(현지시간) 80년 5월 10일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가 미 국무부에 보낸 비밀 전문 등 관련 문건을 공개했다. 셔록은 정보공개법에 따라 문건을 확보했다.

글라이스틴 대사가 미 국무부에 보고한 5월 10일자 전문에 따르면 대사는 5월 9일 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한국 정부의) 법 질서 유지 필요성을 이해하며, 우리는 군 투입 비상계획 수립을 막지는 않겠다(I expressed understanding the need to maintain law and order and said we would not obstruct development of military contingency plans)”고 밝혔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특히 “최후의 수단으로 군대를 사용하는 비상계획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점도 미국은 이해한다”고 최 실장에게 밝혔다. 그는 같은 날 최 실장과의 면담에 앞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과의 면담에서도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 사령관, 최 실장과의 연쇄 면담에서 실제 군 투입 가능성을 낮게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전문에서 “최규하 대통령과 전 장군이 군대 투입을 상당히 꺼리고 있다는 입장을 파악하고 기뻤다”고 보고했다.

한편 글라이스틴 대사가 광주 민주화 운동 직후인 80년 6월 25일 국무부에 보고한 별도의 문건에 따르면 미국은 신군부를 비롯한 권력집단 내부의 일부 반미(反美) 조짐을 우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최광수 실장을 만나 “미국은 야권과 반대 진영의 반미 비판주의는 차치하더라도 체제 내부의 반미 책략에 대해 특별히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한국과의 기본적인 안보·경제 동맹을 유지하려 하고 있지만 전두환 장군과 군부는 관계의 붕괴가 한·미 관계에 초래할 피해를 충분히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며 “반미 문제는 잘될 것으로 보지만 유감스럽게도 현 행정부 내 몇몇 인물은 불장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글라이스틴 대사는 80년 9월 22일 당시 주영복 국방장관과의 면담에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재판과 관련, “DJ 재판의 불행한 결과는 한·미 관계에 심대한 손상을 줄 것”이라며 원만한 처리를 촉구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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