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벤처업체 지중 강판 기술로 '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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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직원 1백여명의 건설 벤처업체가 콘크리트를 대체하는 환경친화형 지중(地中)강판 기술로 거대한 토목 구조물 시장에 작은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평산에스아이(http://www.pyungsan.co.kr)는 파형(波形)강판으로 소규모 터널이나 지하 통로.교량 등을 만드는 회사. 파형강판이란 일반 철판에 물결 모양의 골을 만든 것으로 이 골이 압력을 분산시켜 무게를 지탱하는 힘이 더 커진다.

같은 크기의 터널을 만들 때 콘크리트 구조물에 비해 두께는 20분의 1 이하, 무게는 5분의 1 이하로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 콘크리트 양생 과정에서 생기는 환경오염 문제가 없고 재생이 가능해 환경친화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시공비도 콘크리트 터널에 비해 30% 이상 싸다.

미국에서는 지중 구조물 시장의 35%를 차지할 만큼 널리 쓰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표준 기술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받아 왔다.

그러나 1997년 평산에스아이와 포항제철이 공동으로 실용화 기술을 개발하면서 조금씩 국내 토목 현장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부친이 운영하던 건자재 업체를 이어받은 이종화(35.사진)사장은 미국.일본의 관련 업체와 공사현장 수십곳을 찾아다니며 지중강판 기술의 노하우를 익혔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가 현장을 스케치해 오면 사내 기술자가 시공방법과 규격을 역으로 추산하는 식이었다.

연매출 50억원인 작은 중소기업에 기술개발을 맡기는 것을 못미더워하던 포철도 결국 이같은 李사장의 열의에 투자와 지원을 약속했다.

97년 발주처의 의구심을 달래기 위해 일본 제품으로 중앙고속도로에 시범 시공을 해야 했지만, 2년 만인 99년 초 자체 기술로 만든 제품이 서해안 고속도로에 첫 시공됐다.

지난해에는 임진강 통일대교와 개성을 잇는 남북간 도로의 남측 6㎞구간 내 3백여개 통로와 수로에 이 회사의 파형강판이 쓰였다.

회사 매출도 급증하고 있다. 95년 35억원이던 매출액이 파형강판 수요가 늘며 지난해에 1백50억원으로 뛰었고 올해는 2백60억원이 무난하다는 것이 회사측의 예상.

평산에스아이가 기존 콘크리트 구조물업체를 긴장시키고 있는 것은 최근 나온 한국도로공사의 자료 때문. 도공(道公)은 지중강판 시공을 올해 상반기 경영 혁신의 대표적 우수사례로 꼽으며 향후 소형 터널의 상당 부분을 지중강판 구조물로 시공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李사장은 "2004년 국내 구조물 시장의 10%를 차지해 매출 1천2백억원,영업 이익 2백50억원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평산에스아이는 지중강판과 관련해 24건의 각종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적 지중강판 회사인 캐나다의 AIL과 15년간 기술도입 독점 계약을 맺은 상태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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