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술집 매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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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술집을 찾은 한 사내가 앉자마자 마담에게 값비싼 30년짜리 몰트 위스키 넉 잔을 시켰다. 사내가 단숨에 스트레이트 넉 잔을 다 비워버리자 걱정스런 표정으로 마담이 물었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으신 모양이죠?" 그러자 남자가 말했다.

"당신도 내가 가진 것과 똑같은 걸 갖고 있다면 그럴 수밖에 없을거요."

당연히 마담이 되물었다."무얼 갖고 계신데요?"

사내의 대답."50센트… 꺼억."

가진 돈도 없이 술 달라는 사람을 술집 마담들은 제일 싫어한다. 자선사업을 하는 게 아닌 다음에야 어느 술집 주인이 주머니에서 먼지만 풀풀 나는 사람을 좋아하겠는가.

무전취주(無錢取酒)하는 사람 다음으로 꼴보기 싫은 사람은 술 마시는 매너가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술집 마담들은 입을 모은다. 아무리 술과 웃음을 파는 서비스업 종사자라지만 들어간 술이 술 귀신으로 변해 패악(悖惡)을 부려대는 사람을 곱게 보아주긴 어렵다는 것이다.

말장난을 즐기는 중국 사람들은 술에 취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갖가지 행태를 한자 열 자로 정리했다. 이른바 '취객십경(醉客十景)'이다.

낙(樂).설(說).소(笑).조(調).창(唱), 즉 즐기고 말하고 웃고 어울리고 노래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술 마시는 모습이라면 노(怒).매(罵).타(打).곡(哭).토(吐)는 음주 매너가 평균 이하인 사람들이 보여주는 꼴불견이다. 화를 내고 욕을 하며 때리고 울고 마신 걸 토해내니 누군들 좋아할까.

술집 매너가 좋은 사람이 직장에서도 성공하더라는 일본 술집 마담의 이야기가 엊그제 신문에 실렸다. 도쿄(東京) 긴자(銀座)의 한 고급 클럽 마담이 일본의 어느 대학교 초청 강연에서 35년간의 접객 경험을 바탕으로 털어놓은 소감이라는 것이다.

"클럽 종업원들을 진심으로 대해주는 사람 중에서 사장이 많이 나오더라"는 마담의 얘기는 유흥업소 종사자들의 손님에 대한 기대를 짐작케 한다. 매상만 많이 올려준다고 최고가 아닌 모양이다.

매너 좋은 사람이 성공한다는 얘기가 어디 술집 마담들만의 얘기일까. 남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알며 계산 정확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건 지당한 말씀이다. 어울려 사는 것이 세상살이니 안 그럴 리 있겠는가.

하지만 술잔에 기대어 일상의 피곤함을 달래보겠다고 제 돈 내고 찾아오는 손님에게 야박하게 매너를 따진다면 그 또한 매너는 아닐 듯싶다.

배명복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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