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 커지는 수능 부정] 전파차단기 불법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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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인 지난 21일 서울 강남의 한 교회. 하루종일 1만명이 넘는 신도가 다녀갔지만 한번도 교회 안에서 휴대전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부분 지니고 있었을 휴대전화가 침묵한 이유는 뭘까. 바로 전파차단기 때문이다. 이 교회는 예배 분위기 유지를 위해 몇년 전 교회 안에 전파차단기를 설치해 놓았다.

이 차단기는 휴대전화와 같은 주파수대의 전파를 발사, 혼선을 유발해 기지국 전파가 휴대전화 이용자를 찾지 못하게 한다. 비교적 단순한 기술로, 간단한 장치만으로 가능해 일부 교회나 공연장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5m 반경을 커버하는 제품의 가격이 약 40만원 정도다.

문제는 설치 자체가 위법이라는 것. 현행 전파법.통신비밀보호법은 전파차단기 설치 등 통신을 방해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전파법 29조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엄한 벌칙도 정해져 있다. 하지만 단속 실적은 올 들어 독서실.극장.병원 등 3곳에 불과하다. 국립 서울대조차 오는 30일 수시 전형 때 고사장 주변에 전파차단기를 설치할 계획이다.

정부는 금지 이유로 "전파의 특성상 방해 전파가 미치는 범위를 명확히 설정할 수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인근 지역에서 선의의 피해자를 낳을 수 있고, 자칫 범죄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정통부는 실제로 이번 수능 사태 이후 '전파차단기로 커닝을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이 법 규정을 내세웠다.

하지만 고사장이나 공연장 같이 꼭 휴대전화 차단이 필요한 경우가 있고, 또 현실적으로 여러 곳에서 별문제 없이 사용되고 있는데도 아무런 예외규정 없이 무조건 금지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많다.

한 공연예술계 관계자는 "전파차단기가 실제로 많이 쓰이고 있음에도 단속을 안 하다가 문제가 생기니까 법 규정을 들이대 면피하려는 공무원들의 자세는 복지부동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전파차단업체 관계자들도 독립 건물을 가진 대형 교회나 대형 공연장 같은 경우 인근 통신 방해가 거의 없지만 매출 감소를 우려한 통신업체들이 인근 지역의 피해를 과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법 규정 때문에 2000년 10여곳에 달했던 전파차단기 업체들은 현재 대부분 망했고, 5곳 정도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 매출은 대부분 수출에서 나온다.

정통부는 이번에 드러난 문제점을 토대로 공청회 등을 거쳐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정통부의 한 관계자는 "전파차단기 설치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일부 국회의원도 의원입법 추진 방침을 밝혔다"고 말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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