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룡 목사에게 들어본 남북관계 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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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금강산에서 열린 6차 장관급 회담의 결렬로 향후 남북관계에 일단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통일부 당국자들은 "머지않아 대화가 재개될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전도는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회담 결렬의 책임을 둘러싸고 남북 당국간의 공방이 이어지고, 여야간의 시각차도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원로목사로서 대통령 통일고문회의 의장을 지낸 강원용(姜元龍.84)크리스챤아카데미 명예이사장을 20일 만나 바람직한 남북관계의 해법과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견해를 들어봤다.

-이번 장관급 회담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북한도 나름대로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겠지만, 회담 결과에 실망했습니다. 이참에 북한 지도자에게 진실로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요. 남한내 비상경계 태세를 문제삼아 회담을 파탄시킨 것은 잘못한 겁니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긴장시켜 혹시라도 미국이 반(反)테러전쟁을 한반도로 끌어들일 수 있는 구실을 줘서는 안돼요. 남측 정부에도 큰 걸 생각해서 작은 것은 좀 양보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홍순영(洪淳瑛)장관이 회담 때 시장경제 얘기를 북측에 했다고 알려지고 있는데, 체제 얘기는 당분간 말아야 합니다."

***이산가족 어디서든 만나야

-'이산가족 금강산 연내 상봉'까지 접근했다가 무산됐습니다. 실향민으로서 누구보다 안타까우실 텐데요.

"89세 된 누님이 북한에 살고 있어요. 그렇지만 내가 북한 정권담당자라 해도 남한사람이 북한가족 만나러 고향까지 오는 것은 체제안전상 받아들일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만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수시로 만나게 해야 합니다. 판문점이 안된다면 금강산도 좋아요."

-평소 '동족상잔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지론을 펼치셨는데, 실제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6.25 같은 전면전은 현실적으로 어렵겠죠. 하지만 김일성(金日成)시대가 노동당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선군(先軍)정치, 즉 군부가 앞장서는 시기입니다. 김정일 주변의 경직된 강경파들이 돌발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하지만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 화해협력 분위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전쟁을 막기 위한 우리 사회의 노력은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아닙니까.

"세가지가 필요합니다. 여야가 대북.안보문제에 초당적(超黨的)으로 힘을 합쳐야 합니다. 또 국민들은 정치판에만 맡기지 말고 평화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실천해야 합니다.6.15공동선언에는 '우리민족끼리'라며 자주를 강조했지만, 우리문제를 주변국가와의 협력속에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은 가능하다고 봅니까.

"정치판 등 지금 같은 남한내 상황에서는 내가 김정일이라도 오지 못할 거예요. 대규모 환영군중보다는 반대시위와 붉은깃발이 맞설 것이고, 전력지원 등 金위원장이 가져갈 선물도 야당협의 등이 마땅치 않아요. 하지만 6.15 공동선언에서 서면으로 약속한 것을 무시할 수도 없겠죠. 시기를 '적절한 시기'라고 했으니까 우리가 너무 보채지 말았으면 합니다. 얼마전 서울에 온 레이니 전 주한미대사가 '서울방문에 앞서 비무장지대 내에서 남북 정상간 중간회담을 하자'는 방안을 얘기하던데 저도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봅니다."

-대북지원과 관련해 '지나치게 퍼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북한체제는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관계와 '동포애와 한민족으로서의 관계'라는 두가지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북한 동포들에게는 동포애와 사랑을 아낌없이 퍼주어야 합니다. 국내에 쌀이 남아돈다는데 북에서는 몇백만이 굶어죽는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남는 쌀을 사서 북한에 보내는 운동을 하면 나부터 열 가마는 살 겁니다."

*** DMZ내 정상회담 해볼만

-대북관계와 관련한 바람직한 여야관계는 무엇입니까.

"서독 브란트 정부가 1967년 동방정책을 추진할 때 집권 사회민주당은 야당인 기독민주당에도 모든 비밀내용을 제공하면서 협력을 요청했어요. 후에 기민당이 집권해 콜이 총리가 됐을 때 모든 정책이 바뀌었지만 대(對)동독정책만은 바뀌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대북정책에 지나치게 매달리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대통령 통일고문회의 의장도 지내셨는데 어떤 조언을 주시겠습니까.

"하고싶은 대통령도 했고 노벨상도 타지 않았습니까. 이제 국가를 위한 마지막 봉사를 국내정치에 집중시키고 선거를 공정하게 해서 물러난 뒤에 전직대통령으로서 명예를 보전하는 것이 金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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