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책임론' 터져 나온 검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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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죽을 맛이다. 대책을 논의할 힘도 없다."

대검의 한 간부는 진승현(陳承鉉)씨 금융비리사건 재수사와 이에 따른 야당의 신승남(愼承男)검찰총장 자진 사퇴 요구 등으로 어려워진 검찰의 상황을 이같이 표현했다.

특히 대부분의 검찰 간부들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얽힌 실타래를 풀어야 될 지 모르겠다"며 난감한 표정들이다.

조직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나름대로의 수습책을 제시하거나 언론에 이해를 구했던 검찰 간부들이 이처럼 난감해 하는 것은 愼총장과 김각영(金珏泳)대검차장이 陳씨 사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검차장이었던 愼총장은 이 사건 연루 의혹을 받고있는 김은성(金銀星) 당시 국정원 2차장의 방문을 받았고, 수사가 축소지향적으로 된 것에 金차장의 방문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란 추측이 나돌고 있다.

또 金대검차장은 지난해 서울지검이 정현준(鄭炫埈)사건과 陳씨 사건등에서 국정원 관계자들의 연루혐의를 포착하고도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을 때 지검장이었다.

이 때문인지 검찰 고위간부들은 "축소수사를 한 것으로 드러난 지난해 陳씨 사건 수사팀을 문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문책이 능사는 아니지 않느냐"며 말을 흐린다.

그러나 일선 검사들의 분위기는 다르다."재수사까지 시작했으면서 검찰의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데 대해 속시원히 설명하는 사람들이 없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온다. 그야말로 현재 검찰이 처한 상황은 최악으로 보인다.

그동안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질 때마다 어렵게 수습하고 넘어갔던 때 하고는 분위기가 다르다. 더구나 '이용호 게이트'에 대한 특검까지 예정돼 있어 검찰로서는 '산 넘어 산'이다. 별다른 해법은 없는 것 같다.

재수사를 통해 국정원 간부들의 비리 의혹을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 그리고 그와 관련한 검찰 내부의 책임을 철저하게 따져야 한다. 검찰의 신뢰 회복은 더 이상 말로는 안 통하게 됐다. 이제는 정말 뭔가 보여줘야 한다.

박재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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