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서울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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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예전 잠수함 개발 초기 한때 수병(水兵)들은 토끼를 안고 배를 탔다고 한다. 산소부족을 감지한 토끼가 이상징후를 보일라치면 바다 위로 잠수함을 밀어 올리는 것이다.

『25시』의 작가 C 게오르규가 서울 방문 때 던졌던 이 말은 암시다. 병든 시대의 징후 포착이 작가의 임무라는 얘기다. 한데 켜켜이 시멘트벽에 갇힌 도회지 삶의 산소부족은 한 풍수학자에 의해 감지됐다.

최창조 전 서울대교수의 고백이 그것인데, 그게 꼭 비명소리를 닮았다. 얼마 전 『세계의 문학』에 발표했던 뛰어난 산문 '대학을 떠나 바람과 물의 길에 들어서서'가 그것인데, 대학 사임 전후 얻었던 지병(持病)에 대한 고백이 예사롭지 않다. 대사회 공포증이라 할 이 병은 '서울이라는 잡답(雜沓)지대' 때문이라는데,그것이 시대징후에 대한 매우 정상적 반응으로 판단된다.

"일은 시외버스 안에서 벌어졌다. 숨을 쉴 수 없는 것이다.누가 목을 조르는 것 같은데,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 고통은 내 생활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사람 많은 도시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증세가 찾아들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공사장 지하에 뛰어들어 웅크린 채 한나절을 보낸 적도 있었다." 심할 땐 한밤중 방안을 벌벌 기면서도 혹시 아들이 못난 아비 모습을 볼까 걱정했다는 고백은 거의 처연하게 들린다.

서울 생활에 이렇게 망가질 무렵 산이 말을 걸어오지 않고 차갑게 외면했었다는 신비스런 고백도 하는 그가 '인간을 위한 지리학'을 위해 대학을 떠난 것도 그 맥락이다. 최교수 얘기는 지난주 '씨받이 건축'의 후일담 때문이다.

충격효과를 위해 모진 표현을 구사해봤던 그 글 이후 적지 않은 독자 e-메일을 접했다. "과격논조에 당황했다"(애독자 전씨), "조목조목 맞는 말"(케인지안) 등 견해도 갈렸다.

서울이라는 도시공간은 그만큼 논란거리다. 중요한 건 그저 멋진 건물이 아니다. '사람을 상하지 않게 하는 공간'이 우리 목표다. 그 점에서 최교수의 옛 지병은 우리 모두가 앓는 병이기도 하다.

그렇다. 씨받이 건축물에 둘러싸인 불모(不毛)의 서울은 둘 중 하나다. 질긴 내성(耐性)의 독종을 만들거나 속병을 키운다.과연 도시의 일상이 문화.자연과 함께 숨쉬게 할 순 없는 노릇일까? 창덕궁에서부터 남산을 거쳐 우면산 예술의 전당까지 연결된 녹지다리를 통해 다람쥐가 한걸음에 내달릴 수 있는 공간…. 우리 같은 장삼이사들이 서울에서 버티는 제3의 길은 이런 몽상이다.

조우석 문화부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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