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샘] 만화원고 잇단 증발 출판사 실수에 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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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만화 원고는 만화가에게 '자식'처럼 소중하다.

그런데 출판사가 책을 내는 과정에서 또는 잡지 연재가 끝난 뒤에 원고를 분실했다면 어떻게 할까. 응당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다면 얼마나 물어줘야 할까.

최근 만화가 백성민씨가 『토끼』의 단행본을 출간하는 과정에서 원고 1천여쪽을 분실한 서울문화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998년 대한민국 출판만화대상을 수상한 『토끼』는 서울문화사가 발행하는 『빅 점프』에 연재됐다가 단행본 다섯권으로 출간됐었다.

백씨는 결국 소송을 취하하기로 하고 그 대신 원고료에 해당하는 7천여만원을 받아냈다.

지난해 『호(虎)』로 대한민국 출판만화대상 저작상을 받았던 안수길씨 역시 출판사의 원고 분실로 송사 직전까지 간 형편이다.

잃어버린 원고는 수년 전 웅진출판이 발행하는 잡지에 연재됐던 어린이 만화 『아기호랑이 캉고』 1백50여쪽 등이다. 안씨는 자신이 일본의 고단샤(講談社)와 계약했던 내용을 참고삼아 원고료의 두배인 5천여만원을 요구했지만 협상이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문제는 출판사마다 만화를 보관하는 체계가 갖춰지지 않았을 뿐더러 잃어버렸을 경우 보상의 기준도 뚜렷이 없다는 점이다. 백씨는 "누구도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 지를 모르는 상황이 작가로서 자존심 상하고 화가 나더라"고 토로했다.

작가의 재산임은 물론 더 긴 안목으로 봤을 때 사적 자료로 남아야 하는 원고가 소중히 다뤄지지 않는 현실, 그리고 배상을 두고 송사까지 거론되는 상황은 분명 개선이 필요하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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