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라운드 8년간 57조원 헛사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 직후 정부는 "개방에 대비할 10년을 벌었다"고 강조했다. 그 뒤 단일사업으로 최대인 57조원의 자금을 농촌에 쏟아부었다.

우리도 미국처럼 넓은 농지에서 콤바인과 트랙터를 몰고, 꽃과 채소가 가득한 첨단 유리온실을 짓고 깨끗한 축사를 세우면 수입 농축산물과 경쟁하면서 잘 살 것으로 생각했다.

만 8년이 지난 지금, 우리 농촌은 겉으론 그럴 듯한데 속으론 곪아 있다. 반듯하게 정리된 논에, 집 앞마당에는 트랙터와 경운기를 갖췄다. 그럼에도 농민들은 연례행사처럼 농가부채를 경감해 달라고 시위를 벌인다. 지난 13일에는 서울 여의도에서 쌀값 하락에 항의하며 벼 가마를 태웠다.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생산기반은 늘어났다. 그 결과 농사는 풍작인데 가격이 떨어져 채산을 맞추기 어렵다. 1㏊도 안되는 땅을 위해 사들인 농기계는 녹이 슬고 빚 독촉장이 날아온다. 잡초가 더 많은 유리온실도 있다.

14일 뉴라운드가 시작됐다. 2004년부터 정부의 쌀 수매가 어려워진다. 세계무역기구(WTO)가 허용하는 최고 관세(4백%)를 매겨도 중국쌀이 한국산보다 싸다. 이런 상황에서도 15일 농림부 측은 뉴라운드 대책을 설명하면서 "2004년까지 시간이 충분하고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해 농업분야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계속 인정받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농촌경제연구원 이정환 부원장은 "UR 직후 외국에선 농촌 구조조정에 나섰는데 우리는 오히려 생산기반을 확대하는 쪽으로 나가 오늘과 같은 상황을 맞았다"면서 "이제라도 시장원리를 적용해 농산물 값을 낮추면서 생산량을 조절하고, 이에 따른 농민의 손해는 국민 합의 아래 직불제와 같은 보조금으로 보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효준.정철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