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힌 이산상봉… 북한 군부 입김 작용한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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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금강산에서 열리고 있는 6차 남북 장관급 회담이 '미국 테러 사태'의 벽을 쉽게 넘지 못하고 있다.

남북 양측은 한때 '연내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재개한다'는 데 사실상 합의했으나 북측이 12일 새벽 공동보도문 작성을 위한 막판 절충에서 또다시 미 테러와 관련한 남측의 비상경계조치를 문제삼으면서 꼬였다.

9일과 10일 전체회의에서 김영성 단장의 기조발언 등으로 대남 비난의 수위를 높인 북측은 11일 오후 전체회의에서 홍순영(洪淳瑛)남측 수석대표의 종결 발언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가자는 우리측 제안을 받아들여 현안 논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반나절 만에 입장을 바꿔 '상당한 수준의 유감 표명'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배경과 관련, 정부 당국자는 "북한측이 군부의 강경한 목소리를 회담장에 전달하기 위해 막판까지 이산가족 문제를 볼모로 우리측을 압박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장관급 회담에 이어 이산가족 상봉까지 금강산이란 지역으로 몰아넣음으로써 서울 방문에 따른 주민들의 동요나 부작용을 막으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는 얘기다.

양측은 일단 회담 일정을 13일까지로 하루 연장했지만 타결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회담 관계자의 말이다. 북한의 태도가 정도 이상으로 강경하기 때문이다.

특히 남측은 북한측이 말을 바꿨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내막적으로는 양측 모두 일처리를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깔끔하게 하지 못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물론 양측이 판을 깨는 데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북측으로서는 이산가족 상봉 합의.이행 대가로 30만t의 대북 공여 쌀을 챙길 수 있고, 경협추진위원회 2차 회의를 조속히 재개해 각종 대북 지원성 경협 사업을 논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측으로서도 '금강산 상봉'까지 바싹 다가서고도 빈손으로 돌아올 경우 이산가족 등 여론의 곱지 않은 눈길을 의식해야 할 상황이다.

제성호(諸成鎬)중앙대 교수는 "금강산 상봉을 수용하더라도 합의문에 비상경계 태세를 감안해 한차례에 국한되는 것임을 명기하고, 해제될 경우 서울.평양 교환 방문으로 환원토록 해야 한다"며 "불가피하게 남북관계 일정을 다시 논의할 경우도 틀은 그대로 유지하는 게 신뢰 구축에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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