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헬스] 휴대폰 청진기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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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아직은 가상의 이야기이지만 그렇다고 먼 훗날의 일은 아니다.

천식을 앓고 있는 고3 수험생 김군은 3일 전 병원을 방문해 담당 의사로부터 진찰을 받았다. 김군의 병은 약간 악화돼 있었고 의사는 복용 중인 약물의 용량을 늘려 처방전을 내주었다.

약의 양을 늘려 복용한 김군은 오늘 의사에게 병의 상태를 알려야 한다.하지만 병원에 가는 것은 아니다.

김군은 휴대폰을 자신의 기도(氣道)에 갖다댄다. 입을 벌리고 5회에 걸쳐 입으로 숨을 쉰다. 이것이 전부다.

휴대폰을 이용해 담당 의사에게 자신의 숨소리를 e-메일로 보낸 것이다. 물론 의사의 개인 컴퓨터에는 숨소리의 파형 분석이 가능한 소프트웨어가 장착돼 있다.

의사는 김군이 보낸 숨소리를 분석해 현재의 호흡기 기능을 평가하고 과거의 자료와 비교한다. 그리곤 김군에게 전화를 걸거나 e-메일로 약물의 용량과 복용법 등 지시 사항을 전한다. 3일후 김군은 의사에게 다시 메시지(숨소리)를 보내야 한다.

저명한 의학잡지 랜싯(영국 발간)은 최근 영국 글래스고 대학 연구진의 재미있는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연구진은 천식 환자와 정상인에게 휴대폰을 이용해 그들의 숨소리를 연구실의 컴퓨터로 보내게 했다. 물론 무료 인터넷 음성우편 서비스를 통한 것이다. 연구진은 숨소리의 파형을 분석해 정상인과 천식 환자를 분명하게 구별해낼 수 있었다.

아직은 이런 방법이 환자의 진료에 이용되기까지 많은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꼭 병원의 검사실이 아니어도 환자 스스로 필요할 때 자신의 숨소리를 기록할 수 있고 이를 병원에 보내 즉시 의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 분명하다.

휴대폰이 청진기 역할까지 대행하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전재석(을지병원 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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