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 속뜻 읽기] 1.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모든 것이 그렇듯 우리 문화에도 바탕이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유.무형의 문화재를 설명할 때 그 외피만을 거론했다. 그것이 만들어지게 된 문화적 바탕을 간과하는 오류를 범해 온 것이다.

한국의 문화가 조상들의 어떠한 생각과 감정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를 알아가는 작업은 중요하다. 한국문화를 풀어내는 상징 코드들을 민속학자 김종대씨의 소개로 싣는다.

뱀을 이야기할 때 떠오르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징그럽다는 것, 둘째는 정력에 좋다고 하는 것이다.

징그럽다는 것은 이 양서류의 피부와 관련된 느낌이다. 특히 성경에서 이브를 꼬셔 선악과를 따먹게 한 악마의 상징으로 나타나 여자의 적이 된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뱀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정력제라는 점이 더 어필한다. 1960~70년대에는 뱀장수가 많았다.

동네의 공터에 나타나 온갖 구경거리로 사람들을 끌어 모은 뒤 뱀이 정력에 좋다면서 "한번 먹어봐, 요강이 깨져"라고 선전하며 판매하는 것을 본 기억은 성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떠올릴 것이다. 왜 뱀이 정력제의 상징처럼 나타난 것일까.

그것은 뱀을 남성기의 상징으로 생각한 때문이다. 남성기에는 새로운 생명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춰져 있다.

남성기의 모습은 뱀의 머리와 매우 흡사하다. 신라시대의 고분에서 출토되는 다양한 토용 중에서 뱀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저 세상에 가서도 생산을 통해 풍요로운 삶을 유지할 수 있기를 기원한 것이다.

이러한 관념은 생태적인 면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뱀은 겨울이 되면 동면을 하며, 허물을 벗고 새로운 피부를 갖게 된다.

이런 뱀의 변화를 지켜 보면서 사람들은 뱀에게 무엇인가 다른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우리 민족은 뱀이 영원히 살 만큼 정력적인 동물이라고 믿어 왔다.

영원한 삶을 유지하는 것은 누구가 희망하는 꿈이다. 진시황도 죽지 않기 위해서 삼천동자를 풀어 불사약을 구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은 죽었다. 사람들에게 죽음은 가장 무서운 대상인 것이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존재로 뱀을 떠올린 것이다.'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이야기로 잘 알려진 신라의 경문왕은 침실에 뱀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한다. 또한 경문왕은 혀를 가슴 위에 가득 내놓고 잘 정도로 혀가 길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경문왕은 뱀의 정기를 받아들이는 도술을 터득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경문왕도 즉위 14년 만에 죽었다.

제주도에서는 뱀을 마을 수호신으로 모신 곳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예전에는 집집마다 대청의 성주나 안방의 삼신 등 집지킴이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뱀은 '업'이라고 해서 재물을 관장하는 신으로 모셔왔다. 뱀이 영생의 동물이면서 재물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발전하였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제는 뱀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시골에 가도 뱀의 모습은 쉽게 찾아 보기 어려운 지경이다. 몸보신을 하기 위해 마구 남획한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옛날부터 우리 조상이 지녀 왔던 뱀에 대한 인식이 시대가 바뀐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정력이란 것이 풍요로운 삶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