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 보선] 풀죽은 자민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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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자민련은 내심 한나라당이 2석, 민주당이 1석을 얻으면 '황금분할'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민주당 정권에 대해선 DJP 공조를 포기한 대가를 맛보게 해주고, 한나라당엔 자민련의 협조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절묘한 구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완승으로 자민련의 앞날은 불투명해졌다. 정우택(鄭宇澤)정책위의장은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정국을 주도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자민련의 국회 교섭단체 되기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정진석(鄭鎭碩)대변인도 "솔직히 당이 처한 환경이 더 어려워졌다고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 당직자는 "우리당의 득표율이 이렇게 형편없이 나타날 줄 몰랐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당 지도부는 재.보선 결과에 따라 정치권이 한나라당 주도의 양당구도로 아주 고착할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차례의 YS-JP 회동에서 '반(反)이회창, 비(非)DJ'노선으로 양당구도의 틈새를 노렸지만 선거 후 정치환경은 오히려 이회창 총재의 힘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대전.충남북 등 충청권 전체와 영남권 일부 등지에서 승리해 당의 근거지를 확고히 마련한 뒤 대선에서 독자후보를 내겠다는 JP 대망론이 차질을 빚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일각에서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당장 다음달 초에 있을 원외위원장 공개모집에 희망자가 얼마만큼 몰릴지도 불투명해졌다.

김종필(金鍾泌)총재는 이미 "우리가 의지만 있다면 숫자가 문제 아니다. 열명이든 열다섯명이든 문제없이 해나갈 수 있다. 별소리 다해도 눈하나 깜짝 않겠다"며 자민련 사수의지를 강력히 다진 바 있다.

당의 고위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공격적으로 자민련 흔들기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에 대비해 JP도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진석 대변인은 "앞으로 정치권은 수없이 많은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본다"며 "당이 똘똘 뭉치고 JP가 특유의 정치력을 발휘하면 새로운 국면이 전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당직자는 "앞으로 정국의 풍향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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