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은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천안함 사건 원인 규명을 최우선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양국 모두 북핵 6자회담 재개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실제로 성 김 6자회담 미 수석대표에 이어 필립 크롤리 국무부 차관보도 5일(현지시간) “천안함 침몰에 대한 조사가 종결되기 전까지 6자회담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한국 정부와 똑같은 입장이다.
다른 쪽에서는 북한이 북·중 간의 전통적 우애를 내세우며 중국의 지지를 끌어내려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번 방중이 이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을 거라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다. 이에 중국은 김 위원장에게 각별한 예우를 베풀며 환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30일 상하이(上海)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났으나 사흘 뒤 있을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에 대해 어떤 언질도 주지 않았다.
따라서 김 위원장은 이번 방중을 통해 최소한 중국과의 혈맹 관계를 재확인시키는 데 성공한 듯한 인상을 준다. 물론 중국이 천안함을 둘러싼 남북한 간 갈등 상황에서 북한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는다. 베이징 소식통은 “천안함 사건의 민감성을 잘 아는 중국이 섣불리 북한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과거에 보여줬던 중국의 언행과 김 위원장 방중 과정에서 비친 중국의 태도 간에 커다란 온도 차를 실감하는 한국으로서는 적잖은 배신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종전까지 후 주석과 외교부 대변인의 입을 통해 “국제사회가 참여한 한국 정부의 객관적인 천안함 사건 원인 조사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었다. 천안함 사건과 6자회담 분리 가능성에 대해서도 명쾌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그랬던 중국이 김 위원장의 방중 사실을 3일 전 이명박 대통령에게 알리지 않는 등 북한을 감싸 안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한·미 동맹 대 북·중 혈맹 간에 전선이 형성되는 양상이다. 여기에다 일본이 한·미에 동조하고, 북한의 설득을 받은 러시아까지 북·중 진영에 가세하면 한반도를 둘러싼 역학 구도는 과거의 냉전시대처럼 한·미·일 대 북·중·러가 맞서는 상황으로 되돌아 갈 수도 있다.
남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