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머리 숙이며 “사죄·부탁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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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키나와를 방문해 기자 회견하는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 [오키나와 AFP=연합뉴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사진) 일본 총리의 4일 오키나와(沖繩) 방문은 “시종 사죄의 연속”이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총리 취임 후 처음으로 이날 오키나와를 방문했다. 최대 현안인 오키나와의 후텐마(普天間) 주일미군 기지 이전 문제를 결론짓기 위해서였다.

하토야마 총리는 “오키나와 주민 여러분에게 사죄하고 부탁드리려고 왔다”며 간곡히 이해를 구했다. 그러나 오키나와 나고(名護)시의 이나미네 스스무(稻嶺進) 시장으로부터 “후텐마를 100% 오키나와현 밖으로 이전해야 한다. 정부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승리한 하토야마 총리의 민주당은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현 밖으로 이전하겠다고 공약했다. 2006년 당시 미·일 정부가 이 기지를 같은 오키나와현 내 슈와브 기지로 이전하기로 합의한 내용을 뒤집은 것이다.

4일 오키나와 현청에서 열린 나카이 마히로카즈(仲井眞弘多) 오키나와 지사와의 면담에선 냉랭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환영식을 겸한 꽃다발 전달식 때는 사회자가 “환영 꽃다발 전달은 관례”라고 발언할 정도였다.

나카이 지사는 후텐마 기지의 조기 반환과 국외·현외 이전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요청서를 총리에게 전달했다. 이에 하토야마는 “지난해 새 정권 출범을 도와줬을 때 내가 ‘최소한 오키나와 밖으로 이전한다’고 분명히 밝혔다”고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하지만 후텐마 기지를 모두 오키나와현 밖으로 이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대신 바다를 매립하지 않고 말뚝을 박아 활주로를 건설하는 ‘잔교방식’을 도입하고, 헬리콥터 부대는 가고시마(鹿兒島)현의 도쿠노시마(德之島)로 이전하겠다는 절충안을 내놨다.

그러나 나카이 지사는 “현외 이전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달라”고 답했다. 정부안대로라면 미군기지를 더 유치해야 하는 나고시의 이나미네 시장은 완강했다. 그는 지난해 후텐마 기지 유치 반대를 공약으로 시장선거에서 당선됐다. 그의 요청으로 총리와의 만남은 시민회관에서 ‘공개 면담’ 형식으로 15분간 이뤄졌다. 시민들은 “배신” “아이들 학교 운동장에 비행장이 붙어 있는 게 말이 되느냐”고 외쳤다.

야당인 자민당에서는 공약 철회에 대한 총리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에 “공약이라는 건 선거 때 당의 생각이다. 이건 대표였던 나의 발언이었다”며 당 공약이 아니었다는 어이없는 해명을 했다. 주민들에게는 “오키나와의 부담을 줄이는 데 협력해 달라고 미국에 말해왔지만 어디까지 이해해줄지 모르겠다”며 미국에 책임을 전가하는 발언까지 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달 안에 어떤 형식으로든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사퇴 압력에 시달리게 된다. 이럴 경우 정치자금 문제로 검찰의 재조사를 받게 된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郎) 민주당 간사장과 더불어 민주당의 양대 축이 무너질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예상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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