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역(逆)머피의 법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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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오랫동안 줄서서 기다려 내 차례가 되었는데 극장입장권이 매진된다.

일년에 한두 번 쏟는 커피는 꼭 컴퓨터 자판기 위만 덮친다. 공중화장실에서 내가 점찍은 칸에 먼저 들어앉은 인간은 질기게도 오래 시간을 끈다…. '머피의 법칙'은 한마디로 '잘될 수도 있고 잘못될 수도 있는 일은 반드시 잘못된다'는 것이다.

젊은 물리학자 정재승은 저서 『과학 콘서트』에서 영국학자 로버트 매튜스의 연구를 인용해 "머피의 법칙에는 그럴 만한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아침 출근시간에 버터 바른 토스트를 허둥대며 먹다보면 빵을 떨어뜨리기 쉽다.

그런데 떨어진 식빵은 대개 버터를 바른 면이 아래쪽을 향한다. 다시 먹을 수도 없거니와 바쁜 와중에 바닥청소까지 해야 한다.

매튜스는 이 문제에 도전해 '지구의 중력은 식탁이나 사람 손높이에서 떨어뜨린 토스트를 반바퀴 정도밖에 회전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간단한 계산으로 증명했다.

당연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정재승은 '슈퍼마켓 계산대 중 내 줄이 가장 천천히 줄어든다'는 느낌도 확률과 인간의 욕망으로 풀이했다. 줄이 12개라면 내 줄보다 다른 줄이 먼저 줄어들 확률은 12분의 11이나 된다. 여기에 나의 조바심을 더하면 그런 느낌이 들게 마련이다.

결국 이상할 정도의 불운도 대개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상하게 행운이 겹치는 데도 나름대로 까닭이 있을 법하다. 추석선물로 동생과 동생친구에게 나눠 준 복권이 1,2,3등에 당첨돼 25억원을 타게 된 사연도 그렇다.

'확률 2천만분의 1'만으로는 어째 설명이 부족하다 싶더니, 당첨금을 서로 양보하려 한 가난한 형제들의 따뜻한 우애가 '대박'의 뒷얘기로 등장했다. 서민들로서는 부러우면서도 "그래서 복받았구나"며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럼 '분당 대박'은 어떤 경우일까. 자본금 3억원의 회사가 땅을 1천6백억원어치나 샀다. 그것도 수의계약으로 싼 값에 샀다. 그후 법이 바뀌었고, 바뀐 법 덕분에 땅의 용도가 변경돼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됐다. 당연히 복권당첨금 따위는 비교도 안되는 초대형 대박이 터졌다.

관련자들이 "적법하게 진행됐다"니 아직 뭐라 단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어떤 과학자가 나서더라도 이런 엄청난 행운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면 꽤나 애먹을 게 틀림없다.

노재현 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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