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구제금융 받는 그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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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가 딱 그 꼴이다. 국치일을 맞은 그리스에는 만시지탄이 넘친다. 역사는 그렇게 되풀이되고 있다. 그리스는 유로존 가입으로 득을 봤다. 통화(유로화) 가치가 오르자, 가만히 앉아있어도 국부가 늘었다. 집값은 오르고 복지혜택도 커졌다.

그러는 동안 잃고 있는 건 보지 못했다. 통화가치가 오르자 그리스의 수출경쟁력은 떨어졌다. 지금이야 재정적자만 도드라져 보이지만, 경상수지 적자가 위기의 씨앗이었다. 2007~2009년 그리스의 경상수지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13%에 이른다. 대외거래에서 손해를 보니까 대외채무는 늘 수밖에 없었다. 이게 다 재정난으로 이어졌다.

이쯤 되자 ‘공동 통화’ 유로는 굴레가 됐다. 나라 형편을 반영해 자연스럽게 통화가치가 내리고, 이를 기반으로 수출이 늘고, 위기 탈출의 기회를 잡는 순환구조를 잃어버린 것이다.

유로 가입만이 아니다. 2004년 올림픽에서도 그리스는 실리를 챙기지 못했다. 올림픽 100주년을 기념한 올림픽은 성대했다. 그러나 당시 그리스는 애초 계획의 두 배가 넘는 100억 유로를 쏟아부었다. 이게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가려진 문제는 또 있다. 그리스 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재정지출 증가다. 쓰는 게 불가피했다면 거둬들이는 걸 제대로 했어야 하는데, 그리스 세제에는 구멍이 많았다. 뉴욕 타임스(NYT)에 따르면 그리스에서 탈루되는 세금은 연간 230억 유로에 이른다.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고도 남을 돈이다. 지하경제 규모는 GDP의 20~30%다. 미국의 세 배다. 촌지가 일반화됐고, 가족관계를 바탕으로 한 자영업의 비즈니스 관행은 투명하지 못했다. 그리스 경제는 2000~2007년 8.25% 성장했는데, 세금은 7% 느는 데 그쳤다.

일단 구제금융으로 그리스 사태는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상처는 깊다. 해법이 나오는 데 시간이 너무 걸렸기 때문이다. 대응이 늦었던 유로존과 IMF는 ‘더 많은 지원’으로 시장의 우려를 메웠다. 자승자박인 면도 있다. 유로존이 그리스 지원을 머뭇거리는 바람에 부담은 더 늘어났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이번 지원으로 당장 급한 5월 19일의 채무 상환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공은 이제 그리스로 넘어갔다. 그리스는 지원의 대가로 고강도 긴축을 약속했다. 경제를 이끌어갈 성장동력도 찾아야 한다. 그리스가 이걸 못하면 유로존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의 외환위기 때처럼 금붙이를 팔아서라도 나라를 구하겠다는 국민적 합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스에선 긴축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5일에도 대규모 파업이 예정돼 있다.

유로존도 큰 숙제를 안았다. 유럽의 통합을 외치고 출범한 유로는 위기 앞에서 분열했다. 금융위기로 제 코가 석 자인데, 다른 나라를 돕는 게 내킬 리 없다. 지도력도 부족했다. 총선을 앞둔 독일은 국내 반대여론 때문에 지원을 주저했고, 프랑스는 중재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종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유로존 내 경제력 불균형, 만성적인 재정적자 등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며 “하지만 독일 총선이 끝나야만 유로존의 시스템 문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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