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의식, 독도' 특별전 서울대박물관서 열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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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서울대박물관(관장 이종상)이 독도의 의미를 미술로 해석하는 '역사와 의식, 독도' 특별전을 오는 26일부터 11월 25일까지 서울대박물관에서 개최한다. 참여작가는 한국화가 이종상, 서양화가 한운성.전수천.임옥상.육근병, 조각가 이형우.문주, 사진작가 구본창씨 등 8명.

이들은 지난달 29일 독도에 들어가 작품의 영감을 얻고 돌아와 현재 제각각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장르별 쟁쟁한 작가들이 뜻을 같이 해 독도를 매개로 '역사 의식' 을 형상화하는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며 이를 위해 독도를 답사한 것도 처음이다.

답사에는 무용가 이애주 교수(서울대), 미술사가 정형민 교수(서울대)가 동행했고, 서울대 미대 대학원생 8명도 동참해 각자 전시회에 작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독도 탐방은 악천후로 두차례의 좌절 뒤에 성사돼 뜻이 더욱 각별했다. 지난달 5일 첫 답사길은 포항선착장에서 울릉도행 배를 타보지도 못하고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29일 입도(入島)도 28일 독도행이 무산된 뒤 조마조마한 기다림 끝에 이뤄졌다.

작가들은 이런 곡절이 "독도 가는 길은 득도하는 길" 이라는 육근병씨의 농담마따나 자신들에게 독도를 예술화하는 일의 절실성을 더욱 강화시켰다고 입을 모았다.

29일 오전 6시30분 답사단을 태운 해경 경비함이 울릉도 저동항을 떠날 때 잔뜩 찌푸렸던 날씨는 독도가 가까워지며 화창하게 갰다. 경비함은 특별히 독도 주위를 한바퀴 돌면서 보는 위치에 따라 변화무쌍한 '독도쇼' 를 연출했고 작가들은 이를 분주히 스케치하거나 카메라에 담았다.

오전 10시 답사단이 동도(東島)의 접안시설에 내릴 때 국토의 동단(東端)바람에 실린 가을 햇살은 거대한 고적(孤寂)의 바위와 잔잔한 바다에 부딪혀 눈부신 빛을 발했다. 퇴출 위기를 면한 삽살개 '곰' 은 건들건들 춤추듯 걸으며 제복을 입지 않은 손님들을 맞이했다.

동도 정상 헬기장. 이종상씨는 손가락 끝에 먹물을 묻혀 화선지에 서도(西島)의 풍광을 쉴새없이 그려나갔다. 그 옆에 임옥상씨는 길게 드러누워 독도의 하늘을 스케치했다. 구본창.문주씨는 부산하게 여기저기에 카메라의 앵글을 맞췄고 이형우씨는 먼 바다와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한운성.전수천.육근병씨는 따로따로 '숨어서' 독도의 속을 응시했다.

한운성씨는 '돌의 합창' 을, 전수천씨는 '웅대한 자연의 설치' 를, 이형우씨는 '무한대로 뻗는 맑은 느낌' 을, 육근병씨는 '신기루와 같은 아련함' 을 느꼈다고 한다. 또 임옥상씨는 울릉도에서부터 "소리의 디자인에 마음이 끌린다" 고 했고, 구본창씨는 동양화풍의 사진을, 문주씨는 비디오 아트를 선보일까 한다.

독도를 떠나기 전 정오 무렵 작가들은 접안시설에서 독도의 영원을 기원하는 한바탕 퍼포먼스를 펼쳤다. 먼저 이애주씨가 가로 4.8m, 세로 3.6m의 흰 화판 위에서 '독도 해돋이춤' 중 첫 장인 '터벌림춤' 을 힘차게 추며 작가들의 예감(藝感)에 불을 지폈다.

이씨의 춤혼이 생동하는 화판 복판에 이종상씨가 먹물을 흠뻑 묻힌 대형 붓으로 독도를 상징하는 'ㅅ' 자 모양을 그리자 임옥상씨는 'ㅅ' 자를 떠받치는 수평선을 단숨에 가로질러 넣었다. 이어 구본창씨는 화판의 바다 위에 붓을 휘둘러 햇살처럼 먹물을 흩뿌렸고 한운성씨는 'ㅅ' 자 옆에 작은 바위섬 하나를 조용히 그려 넣었다.

그리고 전수천씨는 발바닥에 먹을 바른 다음 뚜벅뚜벅 걸어들어가 화판의 하늘에 해를 그렸다. 마지막으로 문주씨는 화판을 검은 테로 둘러 독도를 영원히 각자의 마음에 각인시켰다. 답사를 이끈 이종상 관장은 "독도는 그동안 정치적 의미망에 갇힌 면이 많다" 며 이번 특별전이 독도를 문화적으로 우리 곁에 있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다.

독도=이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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