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노벨상 10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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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못한 사람에게 주는 떡은 미끼지만 잘한 사람에게 주는 상(賞)은 채찍이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한다는 주마가편(走馬加鞭)이란 말도 있다. 상 자체에 목을 매는 엉뚱한 사람들도 세상에는 없지 않지만 상은 노력의 결과이지 대상은 아니다.

상은 보통 자극과 보상이라는 이중적 함의를 지닌다. 남이 상 받는 걸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나도 언젠가는 상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노력을 고무하고 장려하는 자극제가 되지만 수상 당사자에게는 지난 노력에 대한 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상은 공정성과 함께 어지간한 수준의 물질적 보상이 담보될 때 권위와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지성인의 오스카상이요, 지식인의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노벨상이 올해로 시상 1백주년을 맞았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떼돈을 번 알프레드 노벨이 유서에서 밝힌 숭고한 이상만큼이나 높은 수준의 공정성과 상금액을 유지해 왔기에 1세기가 지난 지금도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노벨상이 처음 수여되던 1901년 수상자들이 각각 받은 상금은 15만 스웨덴 크로네였다. 당시 화폐가치로 평균적인 스웨덴 대학교수의 20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거금이었다.

올해의 경우 1천만크로네로 우리 돈으로 약 13억원에 해당한다. 상금액으로 따져 노벨상을 능가하는 상은 종교지도자에게 주는 템플턴상밖에 없다. 수상에 따른 부가적 수입까지 고려하면 물질적 보상에 관한 한 노벨상은 확실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수상자 선정 과정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논란이 많다. 분야별로 '전년도에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 에게 수여한다지만 해당자를 골라낸다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쉽겠는가.

특히 문학상과 평화상은 '복권당첨' 이라는 농담까지 있을 정도로 늘 말썽의 대상이었다. 레오 톨스토이도 못받은 문학상을 윈스턴 처칠이 받았다거나 헨리 키신저와 레 둑 토도 받은 평화상을 마하트마 간디가 못받은 걸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난 한 세기 동안 탄생한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1백7명이나 되지만 같은 기간 2백50회의 크고작은 전쟁에서 1억1천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노벨상 수상을 마다한 유일한 작가였던 장 폴 사르트르는 독자에 대한 작가의 책임을 거부 이유로 내세웠다. 수많은 역대 수상자들에게 노벨상 수상이 창조력에 마침표를 찍는 '죽음의 입맞춤' 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사르트르가 차라리 현명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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